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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an 23. 2019

동행하고 있는 그대에게

영화 <초행>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곧 길이며 발걸음이라 비유하는 잠언집은 많고 많은데, 길은 커녕 내가 걷는지, 뛰는지, 뒤로 백덤블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머리에 달린 눈이 당장에 주어진 내 앞만 보게 할 뿐 내가 어떤 모양새로 걷고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7년째 연애 중인 수현(조현철)과 지영(김새벽)은 서로의 집에 왕래를 드나들게 되고 연애 기간이 오래 되었음에도 그들의 '결혼'을 언급하는 어른들의 말 앞에서 자신들의 불안정한 입장을 떠올린다. 계약직도 엄연한 직업이지만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노릇에 어른들의 시선엔 환영보다 걱정이 따른다.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을 떠올리고 고민할지언정 무력해하지 않는 그들은 지영의 집이 있는 서울과 수현의 집이 있는 삼척을 오가며 서로 간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처음 걷는 길이라 무섭고 낯선 그 여정을 영화 <초행>은 미디엄샷의 다소 관망적인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가 시작하고, 수현이 받는 한 통의 전화가 관객 앞에 툭 던져진다. 같이 있던 지영이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아버지의 환갑이니 고향으로 내려오라했단다. 그것도 집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그의 여자친구와 같이. 커플이 함께 한 7년의 시간을 줄줄이 읊기도 전에, 영화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난처해하는 둘의 얼굴을 들이미는 것으로 그 설명을 대신한다. 한순간 당황했다 하더라도 곧 이사를 앞두었으니 냉장고에 있는 계란을 모두 먹어 치워야 한다는 이야기로 분위기는 무마되는데, 그들 간에 특정 사건은 터지고 발생한다기보다, 관계의 연륜만큼이나 흘러들어오며 지나가는 느낌에 가깝다. 





설렘이라기보다 편안함, 사랑인지 의리인지 모를 모호한 힘으로 붙어다니는 두 캐릭터는 특정한 극적 사건에 손쉽게 수렴되지 않을 그들만의 대화를 나눈다. 관객에게 설명되지 않은 채 커플의 전사는 종종 생략되고, 그들이 느낀 감정선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인생이 길이며 지영과 수현이 걷는 길은 초행이라 할 때 지영의 어머니가 어서 결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닥달하는 순간이나, 반대로 수현의 어머니가 살아보고 결혼을 생각해도 늦지 않다며 조언하는 순간은 결혼이라는 틀 앞에서 다소 도식적인 셔레이드일 수 있다. '일년만 기다리면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담긴 지영 부모의 아파트와 달리, '이 동네로 다시 돌아올 수나 있긴 한 걸까' 이사를 앞둔 지영과 수현의 집에 대한 걱정은 가족이 집으로, 집이 집값으로 손쉽게 대체되는 도상을 은유하는데, 이 또한 인생사 테두리의 정형적 대비이지 않겠는가. 



영화는 이때 사건보단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여백, 그 공백을 채우는 캐릭터들 간의 대화에 집중함으로써 그 논리적인 관계를 슬쩍 빗겨나가려는 시도를 해나간다. 이 방향성은 카메라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듯한 연기자들이 연기를 하는 것인지 실제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 헷갈리는 착시까지 일으킨다. 그저 그들을 관망하는 카메라가 자연스럽고 차분해보인다는 인상이 나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차를 수현이 몰고, 지영이 핸드폰 어플을 통해 일일이 길을 알려주는 장면은 영화 중간 중간 이동하는 그들의 뒷모습으로 인서트된다. 지영의 부모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 앞 스피커로 들리는 경비원의 음성이나 고속도로를 지나며 갑자기 들이닥치는 새떼 외에도, 그들이 줄곧 바라보는 앞창문에 한 사람이 더 끼어드는 장면이 있다. 바로 서울에서 삼척으로 내려온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나와있던 수현의 어머니이다. 





결혼 혹은 번듯한 직장이라는 한마디로 지영의 위치가 정리되길 간곡히 부탁하는 지영의 어머니나, 그 어머니가 보기에 데면데면한 손님인마냥 그들 커플에게 별 다른 훈수를 두지 않는 지영의 아버지와 달리 수현의 어머니는 그들에게 연루되어 있는 어른들 중 가장 자신의 경험과 인접한 조언을 건네는 인물로 꼽힌다. 



무심해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수현의 어머니가 '무작정 결혼하지 말고 살아본 뒤 결혼하라'는 말을 건네자 지영이 '살아봐도 모르겠으면요?'라며 반문하는 장면은 지영의 어머니 또한 결혼 얘기를 꺼냈으나 끝내 지영의 확답을 받아내지 못한 상황과 대조된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인생사는 모른다'는 영화의 주제가 줄곧 결혼사와 동떨어져보였던 인물의 일상적인 대화 안에 직접적으로 삽입되는 순간에, 술자리에서 취한 수현의 가족들이 대화를 중단시킨다. 





예비 고부 간 대화의 끝을 무마할 새도 없이 지영과 수현은 다시 서울로 출발해야만 한다. 1시간을 조금 넘기는 러닝타임동안 얻어낸 답이 명확하긴 커녕 제대로 질문해보기도 어려웠던 상황에서 그들은 광화문 한복판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촛불시위 현장으로 들어선다. 



지영의 가족, 혹은 수현의 가족 속에서 연기자들의 '자연스러워보였던' 행위를 벗어나 실제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구호소리가 영화와 함께 기록된다. 영화의 첫 시작 관객 앞에 툭 던져진 전화 한 통처럼, 광장 속에 툭 던져진 그들 커플의 발걸음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쪽으로 가자니 저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걸리고, 저쪽으로 가자니 이쪽으로 가는 사람이 걸리며 상대적으로 맞는 길에 대한 혼란이 따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 않는다'는 전제이자 결과가 다소 식상할지언정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것이 안일한 결론이라 쉽게 지칭할 수 있을까. 사건과 인물, 인물과 사건이 서로 손쉽게 대체됨으로써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하기보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잡음, 인물과 인물 사이의 잡담에 몰두하는 영화의 태도가 속전속결 명징한 결론의 하중을 분산시킨다. 광장 전체를 조감하는 신일 수 없는 우리는 그저 동행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 뿐이다. 같이 걸으면 그만이고 그것이 인간미라, 영화가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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