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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Feb 03. 2019

대물림되는 위기, 공허한 시사점

영화 <국가부도의 날>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97년 어떤 위기가 전 국토를 뒤흔들었다. 국민의 코앞까지 다다른 '국가부도'와 'IMF 외환 위기'라는 사태를 현재에 돌이켜 다시 재현할 때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두 가지 층위의 관객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건 그 자체라는 시간선을 직접 겪은 이들이 자리한 '체험의 영역'과 어느 시점 이후, 사태를 보고 듣기만 한 세대의 '체감의 영역'이 그것이다. 영화는 이 둘의 간극을 인지하며 전자에게는 당시의 회고와 위기의 상기를, 후자에게는 상황에 대한 관망과 앞으로의 전망을 동시에 제공한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것은 배우 김혜수가 맡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이다. 영화는 여성의 시각에서 사태를 예상하고도 묵인한 이들을 과감하게 남성 사회로 치환하며 이들을 질책한다.





주도권이 없을지언정 주체적인 한시현의 태도는 - 결말부터 언급하자면 - 이후 세대인 한지민의 얼굴을 한 이아람이라는 인물에게로 계승된다. 눈을 밝히고 당당한 톤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상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내적으로는 판에서 칼을 쥐고 휘두를 수 있는 자에 대한, 영화 바깥으로는 여성 주인공, 여성 배우에 대한 대물림이다. 허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판>에 출연했던 김혜수는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경위에 대해 자신은 남초 영화판 중간에 탁 끼어 살아남았다고 증언한다. 고정된 역할로 생산되고 소비되며 어중간한 목표치 밑에서 발버둥 치거나 아님 그 존재 자체가 박탈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영화계에서 여성이 배우로 존립하기란 1990년대 한국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자신의 언어를 가진 것만으로도 사회와 부닥치는 존재였다는 상황과 맞물린다. 이와 같은 영화의 행보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혼자서 뒤늦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여성의 자리에 대한 대물림 그 주변에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시사점에 대한 언급을 더 이어가 보기로 했다.





영화는 IMF 사태가 도래하기 일주일 전, 위기를 미리 예측한 사람들의 비상대책회의로부터 시작한다. 한시현이 직접 꾸린 대책팀과 재정부 차관(조우진)이 권력으로 혹은 젠더-권력으로 부딪히는 테이블 다른 한 편에 역시 이 위기를 미리 내다본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이 테이블마저 없는 협소한 공간에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리를 연다. 국가 재정에 어느 수를 쓸 것이냐 혹은 어떤 후속적인 결과를 선택할 것이냐는 이들의 문답 또는 대립은 이 정황을 모르는 서민들 특히나 그들을 대표하는 공장주 갑수(허준호)의 행동과 교차 편집된다. '이러고 있다' 혹은 '이럴 것이다'라며 서민의 행동을 예측하거나 선견 하며 절망할 때 순진한 얼굴과 억울한 심정을 떠안은 서민들은 게임판 속의 말할 수 없는 존재의 발, 혹은 갈 곳 없는 발을 가진 말이 된다. IMF를 직간접적으로 보거나 느낀 관객들이 이들의 행위와 감정에 동조하며 그 공백을 채울 뿐이다. 영화는 대책팀과 윤정학의 테이블이 그저 탁상공론으로 멈추지 않게 혹은 멈춰 보이지 않게, 노력한다.  





브리핑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는 현장과의 교차편집 외에도 단상에 선 인물들의 톤과 매너에 집중한다. 영화에서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는 김혜수의 한시현과, 유아인의 윤정학에게 있다. 그 둘이 영화 속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으나, 시기를 넘나드는 통찰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한 데 묶일 수 있는 그들은 자신의 말을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개진해나가는 인물들이다. 김혜수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중저음으로 현 서민들의 동향을 묵묵하게 뒷받침해줄 때, 유아인의 상기된 호흡이 자신의 예측과 딱 들어맞는 상황에 대한 희열과 그에 따른 비통을 치고 나간다. 여기서 다소 안타까운 것은 종종 '그 이상'을 과도하게 넘나들려 하는 윤정학 역할의 욕심이 너무 자주 드러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배우가 드러내고자 하는 인물과 시대의 결을 눙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연기가 아닌 연설이 되어버린 그 배우의 자의식을, 2018년의 시대에서 1997년을 설명하고자 하는 연극적 톤과 과장된 매너를 영화가 충분히 누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점만은 분명하다.





결국 한반도에 IMF가 왔고 산전수전의 시간을 겪으며 2018년이 되었다. 시대의 주인공들이었던 이들의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윤정학이 말하길 "위기는 곧 기회이다"라고 한다. 그 조언들은 누구를 향해 있는가? 당시 서민을 이미 말 없는 발 혹은 발 없는 말로 박제해버린 영화의 교차 편집 앞에서 이미 중산층이 붕괴한 대다수의 N포자들은 무력해진다. 한진규가 말하길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다. 그 조언들은 대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가? 사람 좋던 공장주 진규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며 곧잘 고함지를 수 있는 갑이 된다는 이 도식은 '윗사람'들의 기만을 위협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가? 얄팍한 갑의 도상과 그 반복 속에서 '내레이션을 읊는다'는 위치에 선 그들은 자연스레 상황의 제삼자로 물러난다. 아직도 시대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들이 누군가에 대한 질문까지 미치지 못하는 <국가 부도의 날>은 여성과 여성 캐릭터가 계승되는 와중에 시대에 대한 시사점에 원점을 찍으며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날카로운 방점은 찍지 못하는 영화로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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