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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Feb 09. 2019

살아있는 시체들의 회사

영화 <오피스>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과장 김병국(배성우)은 어느 날 자신의 가족을 모두 살해한 후 도주한다. 그가 몸담고 있던 회사와 같은 팀 내의 직원들은 형사 종훈(박성웅)의 심문을 받게 되지만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평이한 답변만이 들려오고, 과장과 친분이 있었던 인턴 이미례(고아성)마저 입을 닫기에 이른다. 어느 날 김 과장이 사건 직후 회사 건물로 들어간 CCTV를 확보하게 되고 그가 건물에 들어오긴 했으나 나간 사실이 확인되지 않자 종훈은 회사와 팀원들의 주위를 맴돌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일주일에 몇십 시간을 출입하는 일상의 공간이 위협으로 돌아온다는 상상, 이제까지 공간에서 보내온 시간과 익숙함의 공기가 공간의 일원 중 하나인 '나'를 배신한다는 영화 <오피스>의 상상은 회사 바깥의 감시자이자 추적자인 종훈의 시선에서 시작하는 듯싶다가 어느덧 아직 정규직이 되지 못한 인턴 이미례의 시선에서 회사라는 영역 내지 집단, 무리를 바라보게 한다. 일상을 영위할 생계 수단의 영역이자 학벌과 위계로 점철된 집단, 그 권력관계를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은 무리로서의 '회사'라는 공간은 영화 속에서 김 과장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이후 직원들이 차례로 변고를 당하는 유일한 원인, 바로 '피로감'을 제공한다는 전제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일을 하고, 일한 만큼 나오지 않는 실적에 윗선에서 고함을 치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일을 수행해나가야 하는 루틴이 반복될수록 역할로서의 과장, 대리라는 단어로 치환되는 것은 의무감과 책임감이라기보다 피로감, 혹은 무기력함이다. 사회생활 앞에 장사 없으니, 영화는 이 위계의 돌파구로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인 도구, 어디서 구입한 것인지 아직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칼이라는 도구를 캐릭터에게 과감히 쥐어주는 시도를 한다. 처음엔 김병국이 들었으나 끝에 가서 이미례가 마무리짓고야 마는 이 처참한 피의 향연 속에 살인에 절어있는 이 두 캐릭터의 풀려있는 동공은 마치 출퇴근길 좀비들과도 같다. 더 이상 이 세계에서 필요로 하지 않은 쓰레기 같은 존재, 진짜 좀비들이 친히 회사에 임하사 벌어지는 난투극 혹은 난동극은 관객들에게 주머니 속 툭 튀어나온 못에 결국 손이 찔리고야 마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 





영화 <오피스>의 이러한 발칙한 전제는 영화 속 일상, 특히 회사에서 들을 수 있는 소음 내지 소리를 극대화시키는 음향 연출에서 더욱 확장된다. 이미례가 출근길에 탄 사내 엘리베이터를 가득 매운 사람들의 숨소리는 곧 작동을 잠깐 멈추면서 조명을 깜빡거리는 엘리베이터 기계의 소음으로 전이되고 이어지는 이미례의 당황한 눈동자와 호흡이 암전을 오고 간다. 뿐이랴. 회의실에서 스테이플러로 문서를 찍을 때 무언가 잘려나가고 날카로운 침 끝에 종이에 구멍이 나는 사각거림은 문서의 클로즈업 화면과 함께 점점 크게 들려온다. 이미례가 회사에서 보고 듣고 사용하는 사물의 물리적인 특징을 극대화시키는 그 장면들은 일상에서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미례 발 밑의 외줄을 드러낸다.





영화 <오피스>가 풀어놓은 좀비들이 회사를 나돌아 다니는 도식이 한 장면으로 이미지화되는 순간은 바로 심문이 한창 이루어지던 그 시기에 회의실 천장을 자살한 사원 정재일(오대환)의 시체가 뚫고 나온 장면이다. 목을 메단 그의 얼굴은 뚫려있는 천장 구멍에 가려져 입가만 겨우 드러나있고, 그 처참했던 현장을 대변하는 듯 명찰 속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증명사진이 피에 물들어있다. 일상에서 이질적인 상황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해결한다는 건 결국 원인이었던 사물이나 사람을 없애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죽다 살아난 좀비들이 보통의 방법으로 좀처럼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현장 수사 테이프로 회의실을 봉쇄해본들 회사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식품회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둘이나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전전긍긍하는 인물들은 그 찝찝함을 느낄 새조차 없다. 사람이 어디서 죽었든지 간에 일단 회사는 매일 나가야만 한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 사실만으로 팀 내의 직원들 모두 김병국과 이미례가 만들어놓은 덫에 걸리고 만다. 아니, '함께 갇힌' 이들은 먼저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거나 죽임 당하는 운명 앞에 놓인다. 





만년과장이었으나 한순간 회사에서 잘리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인턴으로 일했으나 정규직으로 좀처럼 전환되지 않은 와중에 새로운 경쟁자까지 등장한다. 김병국과 이미례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까지 타인에게 직접적인 폐를 끼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이 착한 사람들이 억울해지고, 그 울분으로 칼을 든다는 도식 자체가 회사 생활의 중심에서 밀려났든 밀려나지 않았든 간에 일상의 지겨움을 한 번이라도 느낀 이들에게는 현실의 쾌감으로 돌아갔을지는 몰라도 그 묘사에서 주춤하는 좀비들의 형상이 다소 아쉽다. 김병국과 이미례가 다른 성별, 격차가 있는 계급에 상관없이 함께 칼을 들었으나, 그 둘이 각각 무엇을 죽였냐는 물음부터 먼저 던져봐야 할 것이다. 



 


김병국은 과장이면서, 한 가족의 가장이다. 이 영화의 그가 퇴근하고 나서 얼이 빠진 얼굴로 집안 현관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생각보다 널찍한 아파트 거실과 웃으며 그를 반기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희귀병으로 절뚝대는 그의 아들 앞에서 그날로 회사에서 해고된 김병국은 가족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해고되었고 더 이상 과장이 아니게 된 이 남자는 당장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에 가장마저 아니게 되었다는 듯 그동안 그가 뒷받쳐 온 가족 구성원을 스스로 '부순다'. 말이 좋아 부순다고 하지, 그 와중에 갑자기 상황을 관조하려는 듯 망치로 사람을 찍어 누르는 실감 나는 효과음과 함께 멀찍이서 어두운 밤의 아파트 단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결국 살인하는 남자 병국과 공범이 되고 만다. 그동안 성인-남성의 뒷모습으로 치환된 가장의 무거운 어깨에 대한 연민을 살인이라는 또 다른 비극으로 치환하려는 영화의 움직임은 그 과정에서 남자가 쳐든 망치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와 할머니, 아내를 무참히 죽이며 캐릭터에 대한 소모적인 활용으로 비뚤게 나아가고, 비극이 아닌 충격, 애도가 아닌 희생을 위한 희생에 대한 시각적 호기심을 부여한다. 





김병국이라는 인물이 영화 속 삶에서 죽음까지 가부장제 남성 가장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면 이미례는 인턴으로 회사의 정식 구성원이 아니라는 지점에서 회사로 대표되는 삶과 실제 물리적인 죽음 -어쩌면 회사 안에서 쥐 죽은 듯 지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모순- 사이에서 제삼자, 중간자로 대표된다. 배우 고아성의 얼굴이 가진 연령에 비해 다소 촌스러운 '이미례'라는 이름은 우직함과 착함의 상징이라기보다 벅찬 루틴 속에서 살아가고자 발버둥 치지만 번번이 헛발질을 하는 인물의 결여이다. 3개월이면 정직원 채용되는 회사에서 6개월 넘게 인턴을 하고 있는 이미례의 위치를 무자비하게 상기시켜주는 건 대리 홍지선(류현경)이다. 



미례가 이미례 본연의 모습으로 가장 먼저 죽이는 인물이기도 한 홍지선은 미례가 한때 사회생활이 힘들어 몰래 울고 있었던 여자 화장실 맨 끝칸에서 변고를 당한다. 이때 방 한 칸에 갇힌 지선이 바깥 낌새를 눈치채고 불안함에 떨고 있을 때 문이 열리기 직전 문 밑으로 손이 튀어나와 바닥을 더듬고, 틈을 통해 겁에 질린 지선을 들여다보는 얼굴 반쪽은 살인자의 정체를 모호하게 하는 동시에 그 익명성을 통해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공범들을 가리킨다. 지선을 죽인 것은 이 '사회', 사회가 부여한 '피로감'이었다는 영화의 결과로 나아가기 위해 화장실의 문이 열리고 조명 아래 드러나는 건 칼을 든 살인마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며 칼에 찔리는 지선의 앞모습이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지선의 눈에 김병국의 뒷모습을 한 이미례가 보이고, 이렇듯 살인마의 정체를 무화시키며 피해자의 고통받는 모습을 그대로 전시하는 양상은 <오피스>가 풀어놓은 도식 안에서 진실된 가해자의 자리를 다시 원점으로 만든다. 어린 여성이 칼을 쥐고 자신을 위협했던 이들을 처단한다는 설정만큼 그동안 침묵되어 왔던 문제들에 명확한 쾌감을 드러내는 것도 어디 흔한가. 그러나 드디어 미례가 '미치고' 말았고, 광기를 회사 안에서 드러내는 순간 항상 올백으로 넘겼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눈에 띄게 흘러내리거나 뒷담화 혹은 앞담화를 서슴지 않은 여성 인물이 그때마다 화장을 고치고 있다는 설정 등이 다소 적나라한 만큼 누구의 손에 칼을 쥐어줄 것이냐는 전제가 명확했던 이 영화는 누구를 처단할 것이냐는 물음 앞에 다소 납작한 대답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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