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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Mar 22. 2019

이토록 B급 감성!

영화 <기묘한 가족>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부산행>의 흥행 이후 한반도에 상륙한 '좀비' 캐릭터가 관객에게 생동하는 코드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논지에 좀처럼 이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비틀거리는 걸음거리와 시체인양 창백한 피부, 섬뜩한 흰자위가 가공하는 정서란 이제 한국 관객들에게 그리 낮설지 않은 대상이다. 오히려 각종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의 매체에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캐릭터의 겉모습은 그대로 차용하되 그 바이러스의 감염 속도와 그 방식 등이 여러 영화에서 변형되고 재생산된 만큼 그 캐릭터가 가진 세계관은 한국의 헬조선 코드와 맞물려 그동안 폐기처분의 대상이었던 타자들을 호명해오곤 했다. 좀비로서 주류 사회에 대한 재전유를 꾀하고자 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의 존재란 너무 사회적인 것이지 않겠는가라는 우려에 맞서 영화 <기묘한 가족>은 B급의 정서가 가장 능숙하게 구가할 수 있는 코미디로서 한발짝 다가서고자 하는 방향으로 화답한다.



'더 이상 젊은 사람이라곤 없는 충청도 한적한 시골마을에 좀비가 나타난다.' 불길한 뉴스와 함께 어느 날 폐공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 좀비. 겉모습만 보아도 섬뜩하고 무서울 법하다는 감상은 기존 좀비 코드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그 개념조차 생소한 마을 사람들의 눈엔 그저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거지 혹은 바보일 뿐, 이는 충청도 특유의 느긋함이라는 코드와 맞물려 기존의 코미디, 슬랩스틱의 방식과 유사하게 작동한다. 이때 좀비는 우연히 마주친 할아버지 만덕(박인환)을 물어버린다. 좀비에게 물린 만덕과 그의 가족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이한 정체에 놀라고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상경했던 차남 민걸은 영화 <부산행> 클립영상이 나오고 있는 핸드폰, 그야말로 '신문물'을 꺼내든다. 



좀비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만들어지며 왜 주변인물을 위협하는가에 대한 학습도구로 영화 <부산행>이 인용되는 이유 또한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불러올 수 있을 것 같다. 거대 자본을 떠안은 정교한 움직임의 좀비가 흥행가두의 열차를 전력질주 했었다면 <기묘한 가족>에서는 느리고 투박한 설정, 그러나 각자의 목적의식이 뚜렷한 캐릭터들로 이를 뒤엎고자 한다. 임산부이지만, 아니 임산부이기에, 사실은 임산부라는 설정과 하등 상관 없는 카리스마의 소유자 민주(엄지원)는 <기묘한 가족>과 대척점에 서있는 바로 '그 영화'와 비교했을 때 가장 대조적인 캐릭터 중 하나다. 그의 무표정한 대사 처리와 긴 말 않고 가족을 진두지위하는 리더쉽을 필두로 영화 <기묘한 가족>은 기존의 판에 박힌 듯 찍혀온 캐릭터상에 대한 작은 반란도 불러일으킨다. 여성뿐만이 아니다. 시골 농촌이라는 도식 속에서 한 가족이 살아가는, 절대 순진하지 않은 방식도 <기묘한 가족>의 조금 특별한 이미지에 포함된다.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는 준걸(정재영), 이상한 낌새가 있을 때마다 후라이팬으로 시아버지를 후려치는 준걸의 아내 민주, 그러거나 말거나 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민걸, 좀비에게 쫑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곤 교감을 시도하는 막내 해걸(이수경). 이 가족들은 이 땀을 흘리다 실신했다 마침내 눈을 뜨는 아버지 만덕을 둘러싼다. 이럴수가. 몸이 썩기는 커녕 20년 회춘한 듯 만덕은 점점 젊어진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대체 비결이 무어냐 들고 일어났고 만덕의 가족들은 이 '감염'을 이용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세상에 좀비란 것이 있고 물린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불로불사의 몸이 된다는 설정 앞에서 가족들은 결코 눈뜨고 당하려하지 않는다. 순진할 법한 공간에서 순진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빗겨나가는 공포는 그들 각각의 캐릭터가 분명하게 안고 있는 목적으로 말끔해지며 또 우스워진다. 



좀비 캐릭터만큼이나 남잡한 재현으로 그동안 재현되어왔던 시골 농촌의 일면이 낱낱한 코미디로 파헤쳐진다. 좀비에게 팔을 물리고 기적처럼 젊어지는 할아버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만덕에게 돈을 쥐어주는 모습은 흡사 '자양강장제'로 사기를 당하곤 했던 농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이 좀비라는 설정으로 인해 허풍이 아니게 된 것이다. 살아있는 도시에, 그보다 더 깨어있는 도시민 사이에선 죽은 시체로 취급받던 좀비는 죽어있던 시골마을의 활력이자 윤활력으로 활개를 친다. 그야말로 '리바이벌'(부활)이다. 우리의 '쫑비'가 창고 안에서 젊어지기 위해 줄을 선 할아버지들의 팔을 물 때 벽 하나를 두고 분할된 숏으로 단절된 두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은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보이는 좀비영화라는 장르에 비트는 시선을 던지고자 하는 연출의 위트라 해두고 싶을 정도이다.  



웃음코드만큼이나 웃겼어, 혹은 웃기지 않았어 라는 식으로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도 없을 것인데 이를 경유하고자 하는 코미디, 그것도 잘 만든 B급 코미디 앞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공백과 그것이 유발하는 웃음으로 하여금 믿음과 편견을 뒤엎어버리는 사태와 마주하게 된다. 영화 <기묘한 가족>의 속도감은 느릴지언정 -중간중간 지루한 장면이 있을 수 있을 지언정- 최근에 개봉한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전복의 시선과 재밌는 시도들을 벌인다. 다소 아쉬운 관객수 스코어를 남기고 떠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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