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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Apr 05. 2019

붙잡히지 않는 시상을 읽다

영화 <한강에게>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를 쓰는 진아(강진아)가 10년을 사귄 애인 길우(강길우)는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불편한 상황을 안은 진아에게 주변인들은 걱정의 눈빛을 던지거나 동정의 말을 건넨다.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은 삶을 살게 된 시인은 자신의 글마저 사치스럽게 느낀다. 더 이상 작업할 수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진아를 자꾸 잠에 빠지게 한다.



길우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진아는 길우가 없는 현재와 길우와 함께한 과거를 산발적으로 오고 간다. 영화가 그의 시간을 아무렇게나 배치한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주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나 좀처럼 진심이 담긴 표정을 보기 어려운 진아의 얼굴을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카메라에 담고 무정하게 툭툭 컷해버리는 편집에서 갈 데 없이 위태롭게 균형잡고 있는 진아의 입지를 본다. 과거는 그와 완전히 대비된다. 둘이 헤어질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할 만큼 길우는 연인 진아의 옆구리에 단단하게 끼어있는 존재다. 둘 사이에서 툭툭 던지는 농담들은 그들이 생전 처음 듣고 말하는 단어들이 아닌 듯 서로에게 친숙하다. 익숙한 시간들을 꽤 길게 비추는 카메라와 편집에 현실에서 벗어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지라도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처럼 그마저 발없는 환영에 가깝다. 손가락을 짚고 행과 행, 연과 연을 넘겨가는 시읽기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블랙아웃과 음소거는 바로 이러한 단절을 드러내고자 한다.



커플은 곧잘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정말 농담처럼 이별하게 된 삶을 비추는 데 있어 영화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건넨다. 강단에 서서 우리는 질문하고 그 질문으로 자신만의 답변을, 시를 찾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진아처럼말이다. '왜'는 직접적으로 발화되지 않고 그렇기에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호명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감상을 증폭시킨 것은 영화 <한강에게>가 다루고자 하는 '현장음'의 존재감이었다. 진아가 서있는 입지에 대해 카메라가 매정할 지어도 사운드만큼은 진아에게 단단히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음악을 쓰지 않은 이 영화는 대화씬 중에 어디선가 '쾅' 울리는 쇳소리를 굳이 빼지 않고, 진아와 길우가 이야기 하는 중의 바쁜 세탁기 소리도 숨기려하지 않는다. 한 시기에 대한 영상 기록과도 같았던 연출의 태도는 현장음에 집중하되 맹목적이지 않았고, 그것에 목매이지 않는 재현을 해낸다. 



영화 초반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을 위로하는 무대에 서서 글을 낭독하는 진아의 목소리는 마이크의 파열음과 시끄러운 주변과 중첩되어 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진아가 세상에 내놓은 시를 완전한 목소리의 나레이션으로 읊는 이 수미상관은 한 시기를 거쳐가는 개인이 시를 완성해나가는 시인으로 변모하는 시간과 중첩한다. 시를 읊는 목소리 중간에 끼어드는 마이크 기계음처럼 그것이 완전한 1대1의 대칭이 아니더라도 유예의 기간동안 사랑과 삶, 연인과 나 자신을 스치는 시간과 공간은 붙잡힐 듯 붙잡히지 않는 시의 시상이기도 했다. 우리는 영화를 봄과 동시에, <한강에게>라는 시를 읽는다. 당분간 시를 좋아하는 혹은 시를 쓰는 모든 이에게 이 영화를 추천할 것이고 끝으로 4월 3일 영화의 개봉전야 GV에서 배우 강진아씨가 언급한 시를 리뷰에 붙인다.



꺾은 꽃이 아까워서 손에 쥐고 있었는데 줄기가 미지근하도록 오래 쥐고 있었는데 왜 여태 그걸 버리지 않았냐고 했다.

신미나 「무르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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