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본 영화들

나만은 제정신이라 생각했던 당신에게

영화 <어스>

by 흰지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들 다 봤다는 <겟아웃>은 구경도 하지 못한 채, 결국 <어스>부터 예매하고 말았다. <겟아웃>을 보지 못한 이유와 <어스>를 보게 된 이유 서로 맞닿아있는 것이 좀 웃기다. 생전 스릴러나 공포 영화를 큰 스크린이 있는 영화관에서 챙겨본 적이 손에 꼽기 때문에, 그렇다고 VOD가 출시되면 보리라 마음먹었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무서운 장면을 질색을 하며 싫어했기 때문에. 영화관 좌석에 몸이 묶여 반강제(?)적으로 감상해야만 내가 감독 조던 필의 연출작을 한 편이라도 보겠지 싶어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을 안고 나름의 도전장을 던져보았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고 한다. 주인공 애들레이드 윌슨(루피타 뇽오)은 자신의 도플갱어 레드(루피타 뇽오)가 함께 공존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 세계는 감독의 전작 <겟아웃>이 그랬듯이, 몇 가지 전제와 반전을 숨기고 있다. 긴장감으로 허리께를 조여오지만 꽤 흥미있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영화의 결말을 봤고, 복선처럼 설치된 몇몇 장면들을 퍼즐처럼 다시 맞춰보고자 할 때 <어스>는 기존의 스릴러와 같은 쾌감을 자아내기보다 괴리감과 슬픔을 앞서게 한다. 자아와 타자. 경계에 선 자아와 그럼에도 삶을 갈구하고자 하는 타자. 몰입의 과정은 때때로 클로즈업 되는 배우 루피타 뇽오의 얼굴 그 자체가 된다. 한 사람의 두 얼굴을 연기해내는 배우의 이목구비가 영화 전체를 증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배우의 연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인공의 연기력은 1인 2역 그리고 그 분산과 중첩에서 비롯한다. 한사람과 같은 두 사람, 지상과 지하를 오가는 이 비극의 시퀀스들은 배우의 부릅뜬 눈과 살고 싶은 몸부림이다. 누가 누구인가, 영화는 자신의 주제의식을 모호한 경계로 퉁치려한다기 보다 조금 도식적이라도 정면으로 부딪히는 방법을 택한다. 과연 타자는 자아를 찾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무수한 검열과 자기관리, 혹은 끝도 없는 불안을 안은 개인, 흑인, 여성, 어쩌면 미국사회를 은유하고자하는 수많은 상징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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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를 감내하고나서 영화를 다시 돌아보라. 복제인간 레드의 복수와 인간 에들레이드의 항거를 대면했을 때 명확한 메세지가 낳은 수많은 납득과 이해는 좀처럼 언어화되지 않는다. 함부로 단언하고 단정할 수 없는 타자를 영화화한다는 과제 앞에서 감독은 쉽게 환원할 수 없는 이미지로서 배우 루피타 뇽오의 이목구비 위로 수많은 웃음과 눈물을 스쳐지나가게끔 한다. 눈으로 본 하나의 얼굴은 분명하나 그 가면은 분명치 않다. 이때 감독은 관객들이 마주할 혼란에 대비하여 후반부 다소 설명적인 독백을 집어넣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한 번 증폭한 세계관은 좀처럼 위상을 굽힐 줄 모르는 것 같다. 속된 말로 <겟아웃>보다 정말 <어스>가 못했다 하더라도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또 한 번 볼 의향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다는 이번 리뷰에 결말에 대한 디테일한 토씨와 묘사를 더 붙이지 않는 것도 그 이유에서일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직접 확인해볼만한 영화다. 그리고 다음 리뷰가 <겟아웃>일 수 있길 나 스스로에게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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