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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Apr 12. 2019

발을 담근 심연을 바라보기

영화 <파도치는 땅>

***     다. 



     , ()  . 유학길을 마다하고 유부녀와 결혼하겠다는 아들과, 소식과 함께 망해버린 학원 사업은 녹록치 않았던 그간의 서울에서의 일상을 보여주지만 그가 향하는 고향은 또다른 낯선 공간이다. 영화 <파도치는 땅>은 이방인과 같은 행적을 한 문성이 군산 지역을 누비는 로드무비의 성격을 취하고 있다. 이 '낯선 고향'을 걸어다닐수록 따뜻한 과거를 회상할 여유조차 없이 그와 그의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드리웠던 한국의 현대사와 마주한다. 더이상 피할 방도 없이, 마주해야만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가장 먼저 군산에서, 성문은 자    지키고 있는  ()를 만나고 그의 존재를 불만스러워한다. 길을 걸     과 부닥치는 성문의 입장에서 역시    엮여  가    .  .   ,           역과      지역에         사실 .  혜의 키에 맞추어   연에  귀기울이고부터   해하는 듯 보인다. 

 


성문과 은혜가 그랬듯, 군산과 군산에서의 시간은 성문에게 일정 부분 적응을 요구한다. 군산 지역을 들여다보는 일은 일단 맞부닥치더라도 서로를 바라보아야 하는 시선을 말미암아, 그 공간의 녹아든 역사와 개인사를 아우르는 작업임에 틀림이 없다. 문성이 돌아다니는 동네 곳곳이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을 지라도 영화 속에서 좀처럼 바다의 지평선을 보기가 힘든 까닭은 바로 그 이유에서다. 하염없이 문성이 바다를 보고 있는 몇 장면이 삽입된다만 그의 시선에서 보이는 바다의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그가 바라본다 한들 바다는 공사현장과 인부들 너머의, 북한 간첩 사건을 조명하는 흑백 TV 화면 너머의, '세월호'의 이미지를 경유한 바닷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문성이 딛고 선 자리는 그 상처로 인해 하염없이 일렁거린다. 그 모든 장면을 지나 영화는 딱 한 번, 인간 문성과 지역 군산, 한국 현대사가 한 데 어우러진 듯한 어지러운 시퀀스 후에 바다의 어두운 심연만을 카메라로 비춘다. 언제든지 고개를 들어 지평선과 하늘을 볼 수 있을지언정 영화는 직접적인 인용으로나마 먼저 심연에서 비극으로, 어두운 이면과 상처받은 이들부터 들여다보게 한다. 



불안함을 안고 가더라도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벗기고 또 벗겼던 전작 <폭력의 씨앗>에 비하면 다소 직접적인 이미지의 인용일 수도 있겠다. 또한 <파도치는 땅>이 모티브로서 빌려오고자 하는 한국 현대사의 두 단면이 '' ''이며 그것마저   수        있겠.  화의 곳곳에선 성문의 시선이 포개어진 얼굴을 가만히 비추는 거울과, 그가 바라보는 가족의 사진이 등장한다. 영 소통하기 힘든 아들과 초반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서 아들의 어린 시절을 담은 사진 액자는 그 부자 간에 선을 긋는 듯 보이고, 간첩 조작 사건에 무죄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사진 속에는 아들이 아닌 은혜 함께였다. 지금 현재 문성의 곁에 있지 않은 이 부재의 이미지들은 영화 곳곳에서 그를 아프게 찌르는 파편처럼 등장하며, 사건의 직접 인용보다 인용하고자 하는 영화의 태도로서 영화 의외의 구석에서 드러난다. 지금은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결국 문성이 보고 있는 TV 속 세월호 유가족으로 환원되었을 때, 인용되고 있는 이미지의 깊이감은 문성이 영화 내내 지나쳐온 부재의 이미지와 일맥상통한다. 직접적이되, 직접적이지 않은 <파도치는 땅>은 분에 넘치는 비극과 육박해오는 인간사를 한꺼번에 조명하려 발버둥치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다만 파도의 밀물과 썰물, 그 심연을 마주 봤을 때 말하기보다 보여주기의 방식으로 입을 열고자 하며 모두 보여주지 못할 지언정 좁게 말하고자 하지는 않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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