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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Feb 26. 2019

시대를 도려낸 낭만의 초상

영화 <콜드 워>

***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45년 지옥 같던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이후 과도기와 같은 냉전시대가 찾아왔고 영화 <콜드 워>는 급격한 변화보다 더 가파른 시대를 살아야 했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1949년 폴란드, 1952년 베를린,  1954년 파리, 그리고 다시 1959년 그 둘이 처음 만났던 폴란드로 돌아오기까지 만남과 헤어짐을 오가는 17살의 소녀와 27살의 지휘관은 사실 지금의 <콜드 워>, 이전의 <이다>를 연출한 감독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어머니와 아버지이다. 슬픈 시대, 그보다 더 슬픈 사랑이야기를 영화로 다루기까지 감독은 1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자신의 부모에게 헌사하는 시나리오를 썼다.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라는,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캐롤>의 카피를 인용하고 싶었다. 두 주인공의 사랑은 유럽 국경의 물리적 거리와, 몇 년에 걸친 시간선을 가뿐히 넘어선다. 영화가 시작하고 막을 내릴 때까지 가수였던 줄라(요안나 쿨릭)와 작곡자 빅토르(토마즈 코트)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들이 함께 서있는 순간들 혹은 서로가 부재했던 둘의 시간들이다. 전작에서의 헤드룸 사용을 그대로 차용하되 전작에 비해 더 극명한 차이의 흑백 명암은 영화 <이다>에서보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인물의 욕망과 목적성에 기인한 장치이다. 그렇기에 서로에 집중하는 영화 속 두 인물의 흰 피부는 그들을 둘러싼 검은 공간, 흑색의 배경에 동떨어져 있는 듯, 더욱 도려난 듯한 인상을 준다. 





도려난 것은 시대 공간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시간 또한 인물과 인물을 경유한 영화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인물과 인물이 만나고 그제야 영화의 시간이 흐른다. 이러한 자의적인 흐름 선상에서 영화는 커플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무대를 시간의 일시정지, 영화의 공백을 통해 제공하고자 한다. 그들 사이의 사랑, 그 감정으로 비롯한 권태와 애증은 오직 두 사람으로 꽉 차있는 대화 쇼트에 다른 이질적인 것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음악으로 매개한 둘의 만남, 이때 흐르는 음악과 그들이 서는 무대 위엔 사랑 외에도 더 많은 수의 관객,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밝은 조명, 말보다 큰 소리의 선율과 멜로디가 존재한다. 영화는 극 중 줄라가 부르는 폴란드 민요의 가사와 그 울림을 통해 둘의 관계가 품을 수 없는 시대, 혹은 시대가 품을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을 조망하고자 하는데, 이때 무대 뒤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등을 비추는 카메라는 영화에서 단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빅토르의 지휘 하에 처음 무대에선 합창단의 뒷모습이었고 두 번째는 파리에서 빅토르와 재회한 줄라가 소수의 밴드 반주에 맞추어 민요를 독창하는 뒷모습이다. 



가사는 같으나 규모의 차이에 따른 각각의 공명은 확연히 다르다. 이러한 다름은 영화 초반 합창단에 합격한 뒤 빅토르에게 호감을 막 가지게 된 소녀 줄라가 세상을 향해 토해내는 힘찬 함성과도 같은 울림, 그리고 몇 번의 이별을 반복한 후 사랑하는 이와의 미래에 대해 더 이상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여성이 읊조리는 기약의 간극과도 같다. 전자가 서사라면 후자는 서정이다. 충돌하는 시간선 위에 시대로부터 도려낸 인물, 그들을 한없이 낭만화하는 영화의 태도는 시대 배경을 지칭하는 <콜드 워>라는 제목과 기묘하게 따로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대비가 분명해진 만큼 더 많은 수의 회색을 품을 수 없는 영화의 명암이 이야기해주듯, 각각의 장면은 아름답지만 낭만화라는 기제는 이들을 한 데 묶을 방도 없이 사랑이라는 도식, 멜로라는 클리셰로만 바라보게끔 한다. 두 인물을 배경으로부터 오려내는 가위질은 마치 비어있는 헤드룸으로 말미암아 관계론을 시대로부터 도려내는 영화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시대의 공기로부터 커플의 사랑은 지켜냈을지 몰라도 이들을 영화의 어우러지는 서사로 엮어내는 데에 안타까운 빈틈을 보인 감상을 두고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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