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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May 01. 2019

집요의 미학

영화 <스토커>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긴장은 스스로 품을 수 없다. 분명 외부로부터 온 무언가에 의해 집중하거나 경계하거나, 여하튼 주의를 기울일 때 근육이 움츠러들고 온몸의 감각은 꼿꼿해진다. 주인공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는 아버지로부터 사냥의 기술을 배우고 나서부터, 영화 <스토커>는 러닝타임 99여의 시간 동안 긴장하며 집중한다. 무엇으로 인한 촉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질수록 날카로움은 내부를 파고든다. 이 강박의 시간들은 박찬욱 감독이 이제까지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리는 동안 틈없는 질서로 쾌감을 구가해온 특유의 세계관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첫문단에서부터 확언하자면, <스토커>가 있었기에 <아가씨>도 가능했다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날 갑자기 인디아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소식을 들어본 적 없었던  그의 동생이 찰리 스토커(매튜 구드)가 집으로 찾아온다. 인다아의 어머니 이블린(니콜 키드먼)은 찰리에게 끌리는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고 인디아는 이 낯선 삼촌의 존재가 탐탁지 않아 보인다. 찰리는 이블린과 가까워지면서도 인디아에게 끊임없는 '신호'를 보내고, 인디아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인디아의 시선을 따라 관객들에게도 집안의 낯선 손님의 정체는 의뭉스럽고 그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영화는 그의 정체를 드러내기까지 긴 시간을 끌려 하지 않는다. 집안이라는 한 공간에 있건만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 저편에 또 다른 인물의 동향을 동시다발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영화의 욕심은 교차편집을 경유한다. 장소와 장소, 그 틈새에 박혀있는 인디아 내면의 생각과 기억들을 목격하는 그 시퀀스들을 돌아보라. 상상인지 진짜인지 모를 샷들이 교파하면서 사진을 찍는 듯한 플래쉬 기법은 단선적이고 단편적일 수 있는 기억을 단서로서 관객들 앞에 흩뿌린다. 이 강박과도 같은 미장센은 해석의 여지를 주되 안심할 틈은 주지 않는다.



집은 모든 것이 뚫려있는 공터와는 다르다. 바깥의 위협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벽과 지붕이 있고 경계진 개인의 보금자리이기에 문과 기둥이 있다. <스토커>의 카메라는 내내 3자대면하고 있는 인디아와 인디아의 어머니, 그리고 찰리를 빙 에둘러싼다. 패닝은 이 삼각형의 안쪽에서 바깥쪽이 아닌 바깥쪽에서 안쪽을 향해있으며 사건의 구심력을 그리고 카메라가 지나치는 인물의 뒷통수, 그 너머로 보이는 나머지 2인의 동선은 멀면서도 가깝고 가까우면서도 멀다. 강박에 한 번 들어서는 순간은 쉬우나 말끔히 벗어나기는 어려운 지점을 박찬욱의 카메라가 해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 <스토커> 속의 관계는 강박을 낳고, 내면으로 파고드는 촉과 같다. 문을 여는 순간 강박이 구가할 수 있는 가장 미학적인 형태의 세계관은 문을 닫는 순간 완결하는, 그러므로 보수적인 원을 그리며 끝이 난다. 그러나 깊은 심도의 이야기, 그를 재현하고자 하는 묘사의 구석구석은 감독의 인장을 진득하게 품고 있다. 결국 '타고난' 인디아가 성장기를 겪은 것처럼 박찬욱의 세계가 풍기느 향도 <스토커>를 통해 깊어졌다고 쓰고 싶다. 그것이 결과론적인 이야기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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