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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May 05. 2019

공동의 공간에 공동을 위한 시간을

영화 <셀마>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인은 모여 대중이 되고 대중은 집단적인 시선과 방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군중이 된다. 방향을 가진 얼싸안음이 카메라에 담길 때 우리는 우글거리는 머리들과 들썩거리는 어깨들, 그들이 외치는 구호를 들으며 '운동'의 실체를 화면으로나마 절감한다. 여기, 차별받던 흑인들을 위해 운동을 벌인 사람들이 있다.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연설가였던 마틴 루터 킹(데이빗 오예로워)은 흑인 투표권의 차별이 극심한 지역이었던 셀마로 향한다. 과거에 죽은 이들과 미래에 태어날 이들을 위해 1965년 군중들의 비폭력 행진이 시작된다. 

 


전적으로 마틴 루터 킹과 그의 동지들의 동선을 따르고 있지만, 영화 제목은 위인의 이름이 아닌 그가 향한 지역 '셀마'이다. 마치 신을 향한 기도처럼, 노벨 평화상 수상의 소감을 낮게 읊조리는 개인의 목소리에서부터 러닝타임은 시작되지만 결국 행진하는 모두가 부르짖는 클로즈업에서 막을 내리는 영화의 행방은 꽤나 명확하다. 영화 초반 흑인들의 기세를 위한 킹의 연설이 두차례 주목되지만 마이크 앞에 단독자로서 울리는 음성 외에도 그에게 내리치는 박수 혹은 반대의 목소리, 갈등하면서도 반발짝이나마 진보하고자 하는 그 주변의 운동가들은 위인의 배경으로만 그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이 맞고 죽임 당하면서도 감정의 고조를 위한 수단으로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운동권 안에서의 소용돌이를 서사의 인과 구조로 차분히 쌓아가려는 영화의 시도에서 비롯한다.



운동은 절대로 하나의 올곧은 선일 수 없다. 진보하고자 하는 사람이 모여있는 공간에서의 분열은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소통의 과정일 뿐이다. 킹이 내세우는 운동의 기지는 따라서 이것이다. "협상하고 실행하고 저항한다." 기존의 셀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SNNC(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의 학생들, 급진적 흑인운동 지지자였던 말콤 X 등 킹 앞에 등장한 사람들은 마냥 흑인 운동이라는 이름 앞에 순순히 길을 터주지 않는다. 이때 말하기와 듣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에게만 그럼에도 같이 걸어나갈 수 있다는 계기가 열린다. 개인이 모인 군집에서 시작된 운동은 결국 각 개인이 서있는 위치를 서로 절감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영화의 분명한 메세지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모였고, 몽고메리로 향하는 다리 위에 선 모든 흑인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던 경찰관들에 의해 유혈사태로까지 번진 이 행진은 사실 이제껏 차별 당하며 살아온 모든 소수자들을 향한 발걸음이기도 하다. 일렬로 서있는 수평으로 하여금 서로의 얼굴을 줄서있는 행렬을 앞에 두고 영화 <셀마>의 카메라는 개개인의 얼굴에까지 집중하고자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진행한 개인들은 영화 서사의 단계로서 과정을 지켜본 관객 개인으로 치환되며 우리가 등지고 선 역사를 함께 그려나가고자 한다. 과거를 돌이켜 역사 속 인물들을 재현의 선상에 두었을 때, 피사체는 미래에 의해 결과론적인 이미지로 환원될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 <셀마>는 사람들의 얼굴과 얼굴이 맞댄 군집의 선으로서 공동의 공간에 공동을 위했던 시간을 부여하고자 하는 방법론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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