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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May 14. 2019

여태껏 우리가 본 적 없던 클리셰

영화 <걸캅스>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걸캅스>라는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작품을 둘러싼 여론이 뜨겁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기존에 있던 한국 상업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코믹영화 치고 소재가 가진 무거움 덕에 마냥 웃기만은 힘든 영화, 그럼에도 현시대의 사정과 요구에 들어맞는 '여성 주연'이라는 이름으로 큰 통쾌함을 안겨주는 영화. 인터넷 속 갑론을박을 보다 보면 이 영화를 두고 어떤 감상을 말하는가에 따라 많은 단평들이 정치적인 위치에까지 달하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그저 개인적인 소회를 풀고자 하는 이 글을 쓰기에 앞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를 재미없어할 이유는 있어도 무서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걸캅스>의 연출은 결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캐릭터들은 영화 속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감정선으로 울고 웃을 따름이다. 이 감정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영화 바깥의 편집 또한 장면과 장면 사이를 손쉽게 넘나들며 영화를 얄팍하게 만든다. 그런데 사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단점은 비단 <걸캅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작-배급-상영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대기업 특유의 양산형 상업영화들이 가진 한계이며, 최근 한국의 대중 영화들이 쳇바퀴 돌 듯 만들어내는 단순한 스토리와 뻔한 신파적 감수성에 지나지 않는다. <걸캅스>를 보며 이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기존 주류 영화의 문법을 따랐을지라도 중심에서 클리셰의 얼굴과 몸짓을 해 보이는 배우 라미란과 이성경,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배우들이 구가하는 새로운 자장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버디무비처럼 욕하고 액션 하며, 자신이 가진 삶과 사건을 한차례 돌아보는 여성 캐릭터들은 우리가 본 적 없던 또 하나의 클리셰를 거듭나게 한다.



한때 잘 나가던 형사 박미영(라미란)은 결혼과 출산 이후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한 채 민원실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일만 할 뿐 아니라 언제든 잘릴 위기에 처해있는 이 중년은 빠듯한 삶 하루하루 버티기에 바쁘다. 민원실장에게 잘 보이려 누가 커피를 돌리고나 있진 않은지, 다가올 고용정리에 대비해 무언의 선물을 찔러야 하지는 않는지 말이다. 형사 캐릭터는 앞으로 중대한 사건에 휘말릴 것이고 그가 근무하고 있는 평화로운 사무실은 그를 방해하거나 앞길을 막아섬으로써 웃음에 충실할 것이다. 앞으로의 스토리를 관객 모두가 안다. 그러나 미영과 시시덕거리는 줄만 알았던 양장미(최수영) 우수한 이력을 가진 해커였으며, 번번이 미영을 못마땅해하던 민원실장(엄혜란)이 형사계에 몸담았었다는 반전은 한 단면으로만 멈춰있던 기존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다시 살아 숨 쉬게 한다. '이면'이 있다는 설정만으로도, '과거'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들이 내뱉는 대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듯한 <걸캅스>는 조연을 주연을 위한 인물이 아니게끔 만들며, 재현을 위한 재현으로만 그쳤던 여성을 다시 호명하는 방식과 일치하는 방법론을 구사한다.



주변부가 이럴진대, 중심 서사인 박미영과 그의 콤비 조지혜(이성경)의 이야기는 오죽할까. 강력계에서는 선후배로, 집에서는 미영의 남편(윤상현)을 둘러싼 '시누이'관계로 미영과 지혜는 연신 서로에게 으르렁댄다. 그러나 20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인터넷 성범죄 앞에 도달했을 때 그들의 '액션'은 여성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인 '리액션'으로서 빛을 발한다. 영화 바깥의 편집이 인물의 만듦새를 이어나가기에 부족했을지라도 우리가 주인공이 가진 사명감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몸소 구가하는 액션과 캐치프레이즈처럼 외치는 대사들 때문이겠다. '예' 혹은 '아니오'의 이상으로, 경찰도 포기한 사건을 '우리가 치자', 죄책감에 시달리는 여성에게 '네 탓이 아니다'라는 외침은 여성 영화의 장르를 원해왔던 세상과 다시 한번 공명한다. 직관적이며 직선적이라 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근래의 개봉작 중 여성 배우가 직접적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을 말하고 말할 수 있었던 작품은 몇이나 되던가? "여자도 형사를 할 수 있구나" 어린 지혜가 뛰어가는 미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이 지당한 문구와 마땅한 현실에 우리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수긍은 버디무비로서의 <걸캅스>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든다.



작품이 내보이는 장점이 있듯 여전히 아쉬운 재현도 남아있다. 액션 장면에서 유독 미영과 지혜가 급소 부위를 맞는 장면에 클로즈업이 가있는 카메라는 정당한 그들의 노동이며 노력을 보여주기 위한 강조처럼 인다. 그러나 샷의 잦은 빈도는 자칫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하나의 타격으로, 그에 따른 볼거리로 소비하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좋아요 클릭수 3만을 노리고자 하는 썸네일의 노출은 단 한 번으로 족하지 않았는가.


영화가 미처 잡지 못했던 '스타킹잉크범', '몰카취미범' 또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세상에 전혀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취미로서의 몰카, 얼굴조차 모르던 행인의 길거리 테러는 사회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실재하는 공포다. 그들은 영화에서조차 법의 심판을 피하고 또다시 우리 주변의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 세상이 원하던 영화가 아직 풀지 못한 현실의 공포, 그에 대한 사회의 '리액션'이 절실해지는 지점이다. 관객석을 나가서도 우리가 <걸캅스> 이후 앞으로의 영화들에 대해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갑론을박을 하든 <걸캅스>는 세상에 나왔고, 개봉 주말에 20만 관객 몰이를 하며 사실상 흥행을 달리고 있다. 영화를 재밌어할 수도 재미없어할 수도 있다. 상업영화 특히나 코믹 장르가 그렇듯 웃음코드와 영화가 만들어내는 템포는 개인의 취향이다. 그러나 취향을 만드는 건 인지이자 세상을 알고자 하는 개인 의지의 차이이기도 하다. 정말 기호를 따지고 들자면 영화가 내포한 특별한 시도들에 대해 시의에 따른 적절성을 평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유로이 다양한 평들에 앞서, 이 영화를 지나치게 무서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세상은 나아가고 있고 <걸캅스>는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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