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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May 29. 2019

그날의 파도 속에서

영화 <김군>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군을 찾아라.' 영화 <김군>의 뒤를 쫓는, 아니 꿰뚫는 목적은 분명하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변을 두고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루머를 지어내는 자들. 그들에 맞서 제 1 북한군, 제 1 광수로 지목된 어느 청년을 찾는다는 이야기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목장갑을 끼고, 수건을 둘러쓴 채 기관총을 다루며 매서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쏘아보는 남자.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를 가지고 당시 젊은 나이에 현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조차 모르는. 그날의 광주를 겪은 시민들을 앞에 세워두고 청년의 사진을 아래에서 위로 훑는 시선은 얼핏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 자가 나타나서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만들고 심지어 믿기까지 하는 사람들 앞에 다시 영웅처럼 나타나주길 바라는 기대마저 든다. 그러나 강상우 감독이 구사하는 94분여간의 러닝타임은 이 얄팍한 생각에 잔물결을 치고, 멋대로 내뱉은 질문에 뒷통수를 맞게 한다. 머릿속의 피해와 피해자에 대해 갖고 있고 가질 수밖에 없었던 편견을 들쳐내며 그 질문이 진정 관객의 것인냥 뒤를 좇았던 시선을 단숨에 무력하게 만든다. 



영화에선 김군을 둘러싼 두 인파가 등장한다. 하나는 광주의 것이요 하나는 광주를 편협한 이데올로기로 몰아넣으려는 이들의 것이다. 전자는 흑백사진으로 순간포착되어 초점이 나가있고, 흔들리고 뭉개져 마치 시대의 징후와도 같아보인다. 후자는 컬러화면에 안정적으로 고정되어있는 카메라에 잡힌 태극기의 물결이다. 한발 더 나아 들어가 전자에는 시간이 있고 후자에는 시간이 있지 않다. 시간이 흐른 뒤 당시를 회상하는 광주 시민들의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녹아들어가있었고 그 얼굴들에 바싹 다가가며 우리는 처음 제시받은 질문에 답변을 견주어본다. 이 얼굴인가, 저 얼굴인가 물어볼 수 있는 시간성이 부재하며 살아움직인다는 맥락에서 루머를 퍼뜨리고 음모를 꾸미는 '저들'은 실패했다,고 단언하고 싶어질 때 영화는 다시 역으로 질문을 가한다. 왜 우리가 저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하는가. 이미 질문을 전제하고 있는 답변은 결국 상대 진영이 만들어놓은 판 안에서 뛰놀 수 있는 것밖에 더 되지 않는 것이냐에 대해 말이다.



답변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힘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김군이 어딨는가, 김군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부합하지 않은 증언들 -이를테면 인터뷰를 한 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증언과 같은- 은 무의미한 답변이 아니게 되는 이 아이러니. 김군을 둘러싼 인파는 흑백의 과거, 클로즈업된 현재를 지나 현재 우리가 사회의 트라우마,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미래를 그리고자 한다. 김군의 제사를 지내고, 이제까지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영상물을 튼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며 다른 아픔을 가진 유족들, 피해자들을 인도하며 위로한다. 애도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가는 시간선은 우리가 보는 군중을 군중으로만 머물지 않게하며 영화를 보는 우리 '군중' 또한 영화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혹은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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