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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un 26. 2019

우리는 무엇을 기대했는가

영화 <칠드런 액트>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더군다나, 극영화이자 드라마 장르에 거리낌 없이 수렴될 수 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서사 앞에서 어떤 '결말'과 '교훈'을 요구하는가. 영화가 보여주고 관객이 본다는 수직의 관계가 이미 깨진 지 오래이고 보여주고 본다는 세부의 층위마저 복잡하게 쪼개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영상물이 가지고 있는 비주얼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도출해내길 종종 원한다. 영화 <칠드런 액트> 속엔 성년과 미성년이 있다. 철저히 이성적인 중년 여성이 있으며 자신의 삶에서 버둥거리는 날 것의 감정을 가진 소년이 있다. 판사인 여성은 생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소년에 대한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판결문이 법원 안에 울릴 때 '나의 선택이 소년의 최선이길' 영화 포스터에 적혀있던 캐치프레이즈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그 선택은 모든 일의 시작일 뿐이었으며 영화의 미덕은 이 시작이 모두의 기대를 어긋나게 한다는 것이다. 



판결을 내리기 전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는 병원에 입원해있는 소년 애덤을 직접 만나러 간다. 이례적인 일이었고 소년과 여성은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간다. 수많은 경력을 쌓아오며 여러 가지의 이례적 상황들과 마주해야 했던 여성과 성년 직전의,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회 외엔 경험이 많이 않은 소년은 한 공간 안에서 서로 전혀 다른 일을 겪는다. 피오나에게 너무나 쉬운 언어들은 소년의 가슴속에 꽂혀 무수한 질문들을 양산하고 뿌리를 내리며 가지를 뻗는다. 주체할 수 없는 씨앗을 품은 소년이 살아 돌아와 피오나에게 끈질긴 구애를 건네고 피오나는 성년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적정선을 그어주고자 한다. 사실 그것은 그녀도, 그녀의 주변 인물도, 그녀의 세상과 맞닿은 관객들도 바라고 있는 처신이자 대처이다. 이와 반대로, 원치 않은 이야기를 품은 소년은 금기가 되고, 과잉을 유발하며 불편함을 안겨다 주는 순간을 자아낸다. 소년의 존재가 질서를 깨는 순간, 우리는 그의 존재를 외면하고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싶은 욕망과 마주해야만 한다. 부디 수혈을 통해 새 생명을 얻길 바랬으나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잉여가 살아 돌아온 순간 우리는 그의 부활을 후회하기에 이르는 아이러니와 마주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소년은 계속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피오나를 스토킹 했을 때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카메라를 통해 보이기도 하고 그녀의 품에 안긴 일기 같은 편지들은 기차를 타고 있는 피오나의 손에서 읽히며 기차의 전경을 떠오르게 한다. 도시에서 시골로 향하며 맨땅이 듬성듬성 드러나고 탁 트인 하늘이 그제야 제 모습을 갖추는 이 트래킹 숏은 짧은 시간일지라도 소년의 순수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피오나의 내면이기도 하다. 소년은 결국 '내쳐진다'. 삶을 따뜻하게 그러나 너무 뜨겁게 불태운 소년이 사그라진다. 실연에 빠진 소년이 악화된 병세에 다시 수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피오나라는 인물의 속마음이자 내러티브의 금기시된 욕망은 다시금 모두가 원하는 해피엔딩을 향해 절멸한다. 



그러나 소년이 살아있을 때 남긴 '찌르는 경험'은 봉합하여 닫힌 이야기에 질문을 부여한다. 이 글의 처음에서 물었다. '우리는 영화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질문을 고쳐 말해본다. '우리는 영화에 기대하기 위해 무엇을 외면하고 왜곡하는가?' <칠드런 액트>의 카메라는 피오나의 뒷자리를, 빈 곳을, 자취를 따라다니는 소년을 카메라로 좇는다. 그의 인상에 필요 이상의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거나, 혹은 시점을 비틀어버리는 일 없이 영화는 소년과 피오나의 동선을 지켜볼 뿐이다. 그 시선은 우리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하지만 영화와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인물을 향해 품을 수 있는 질문의 선은 무수해진다. 영화 <칠드런 액트>의 미학은 그 고요한 끈질김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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