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본 영화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지 Jun 30. 2019

차오르는 시선으로 돌아보라 (2)

네이버 인디극장 : 현실보다 현실같은 II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https://tv.naver.com/indiecinema/playlists


네이버 인디극장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로서, 매달 주제를 정해 극장에서도 쉬이 보기가 어려웠던 독립영화를 묶어 상영하는 곳이다. 이번 2019년 6월 업로드 된 테마 ‘현실보다 현실같은 II : 아이들은 자란다' 는 현재 우리 사회의 아이들의 꿈과 고민을 담은 10편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이 글은 상영작을 보고 난 뒤 쓰는 두번째 글이다


2019년 6월 네이버 인디극장, 현실보다 현실같은 2



학교가기 싫은 날 / 김수정 / 15min 47sec


<학교 가기 싫은 날>이 포착한 가난의 이미지는 사건이 일어나는 가운데 결코 그 사건의 중심일 수 없는 주인공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된다. 무슨 연유에선지 은정은 학교에 가려 하지 않고, 실랑이하는 아빠를 피해 다시 집으로 숨어들어왔지만 월세를 받아내려는 집주인이 나타나자 다시 몸을 웅크려야 한다. 소녀의 하루는 그늘져있으며 눅눅하고 찌든 그림자는 학교에 가지 않았던 진짜 이유에 대해 좀처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집안을 드리운 그림자 속에 소녀가 이따금 서있고 누워있는 광경을 보여줄 뿐이다. 진짜 이유는 잠깐 잠든 은정의 악몽 속에서 밝혀진다. 꿈에서라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소녀를 옥죄어오는 가운데 클로즈업된 팔과 다리, 그리고 피는 가난함을 피해의식의 조각으로 도려낸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어디로 갈 수 있는가. 닫혀진 문 앞에서 은정은 고개를 숙이고 분절된 이미지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 영화가 다소 안타깝다.     



우주의 닭 / 변성빈 / 12min 51sec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우주는 우주네 반 담임 선생님을 짝사랑한다. 한 곳만을 바라보는 사랑을 정작 아무도 알아주지 않자 우주는 담임선생님이 좋아하는 '선물'을 교실로 직접 가져가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린다. 난동을 부리는 와중에 중간 중간 삽입되는 회상의 장면은 우주가 그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드라마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지만 선물인 닭에게 들이미는 우주의 커터칼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자책하는 우주 자신에게 향하는 순간 자극적인 이미지의 평형선을 그린다. 칼이 들이밀어지는 대상들을 카메라가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질문. 장애인이 있고, 그가 사랑을 하며 사랑을 받는 현장의 단순한 포착이 아니라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어떻게 전제하고 있는 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고찰이 다시 필요한 때이다.



봉준호를 찾아서 / 정하림 / 21min 47sec


영화를 배우고자 하는 세 학생이 있다. 직업을 지망하고 일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열기는 결코 막연하거나 허황된 꿈이 아니다. 이를 증명해보이려는 듯 봉준호 감독을 만나 현실과 미래를 논하고자 하는 이들은 매번 아주 분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거절, 그러니까 돌려말하기와 완곡함, 때로는 피로함과 인터뷰할 새가 없는 바쁜 유명인의 일정이 이들을 막아선다. 시도하고, 거절당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전부였다면 영화의 제목은 결코 <봉준호를 찾아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액션을 받아내는 학생들의 '리액션'은 영화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눈을 굴리고 때로는 싸우며, 힘껏 달려가는 뒷모습은 봉준호를 찾아나서다 마침내 찾아내고만 우리들의 '봉준호'를 연상케한다.



연지 / 오정민/ 22min 29sec


생일날 친구들과 바다에 가기로 한 연지는 수영복과 김밥 도시락을 챙기며 잔뜩 들떠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고 물놀이를 할 생각에 신이 난 연지는 연신 핸드폰을 들여다보지만 친구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외려 눈앞에서 욕을 하고 연지를 따돌리며 사라져버린다. 홀로 생일을 보내는 이 아이에게 사실 오늘 같은 날은 한 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듯 연지는 홀로 김밥을 먹고 바다를 구경하다 문구점에 들러 쇼핑을 한다.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혼자 있었던 시간에 누군가가 함께 있었던 흔적으로 포장해야 하는 얼굴엔 점점 무력함이 깃든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행동의 연지는 도중에 주저앉는 것도 사치라는 듯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다.



수학여행 / 김희진 / 30min 51sec


눈병이 나지 않았지만 중학생 병화는 매일 방향을 바꾸어가며 눈안대 쓰기를 고집한다. 매일 아침 녹즙을 배달하고 피자집 전단까지 돌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병화에게 눈건강을 묻지만 소년은 눈병에 걸리지 않았다고만 대답한다. 질문했던 사람들도 거기까지 대화를 멈춘다. 수학여행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그랬고, 수학여행 대신 가지 못한 학생들끼리 서해바다에 가기 직전까지 그랬다. 그러다 종종 일하는 중 마주쳤지만 통성명할 겨를이 없었던 소녀와 서해바닷가에서 통성명을 나누고 말을 트기 시작한 이후부터, 소년은 자신을 향한 관심이자 유일한 보듬이기도 했던 안대를 풀어헤칠 수 있게 된다. 가난이 계속 되고 무력한 노동을 쉴 틈이 없더라도 그날의 모래를 바라보는 소년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차오르는 시선으로 돌아보라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