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들의 불완전하고 계산하지 않아 애틋하지만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원작이 박민규의 소설이라니.
영화를 보기 전 가장 먼저 놀랐던 사실입니다. 잊고 있던 이름이거든요. 사실 그게 아니었으면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들 그런 작가 하나씩 있지 않나요? 가슴에 품고 있는 연인과 시절처럼. 한 명씩 마음속에 담고 있는 소설가들.
전 그게 박민규였고 김애란이었습니다. 물론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을 표절했다고 인정한 후에 그를 마음속에 비워냈지만요.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그리고 '카스텔라'. 삼미 슈퍼스타즈 빼고는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책 이름뿐이지만, 이름만 들었을 때 설레는 무언가가 있는 책들입니다.
대학시절 박민규의 소설은 뭐랄까요? 기행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히피족의 대장 같은 소설가였다고 할까요?
아무튼 '번죽스러운 삶도 참 가치 있는 거야'라는 지평을 열어준 소설가는 박민규입니다. 저에겐 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마지막 박민규의 소설입니다. 그 후로 소설과 책을 멀리했어요.
그렇게 이 책이 나온 지도 17년이 지났습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지날 날의 제 초상화의 일부분을 다시 들쳐본다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그때 왜 나는 박민규를 좋아했을까? 영화를 보면 그때 나를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요.
파반느의 뜻 '느리고' '장중한' '춤곡'의 뜻처럼 느리지만 엄숙하고 발랄한 20대 못난이들의 그런 사랑을 다시 들쳐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연은 김미정의 고아성('레이디 두아'에 이어 김미정 자주 보이네요 요즘?), 박요한의 변요한, 이경록의 문상민(처음 보는 배우인데 스크린 데뷔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김혜수 사극 '슈룩'에 나왔었고.)입니다.
이 3명의 공통점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모두 다 아팠던 친구들이고 아픈 친구들입니다. 왕따를 당해서 사회로부터 소외를 자청했던 김미정, 아버지의 변해버린 사랑에 어머니를 잃고 꿈까지 놓게 된 문상민, 잘 나가는 백화점 유토피아 사장의 아들이지만 첩이 아들이었던 박요한.
예. 모두 못난이들입니다. 아픔이 있는 친구들이 다 그렇듯 애정을 주고 싶은 누군가에겐 그 감정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정말 순수합니다. 점점 영화 내용에 동기화가 되어 간다고 해야 될까요. 서로가 불완전해서 각각이 조금 더 긴밀해지고 친해질 때 그 기분이 묘해집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아니라. 저들 옆에 있는 NPC 1인이 되어 그들을 바라보는 것 처럼 제 마음이 애틋해지는 과정을 느낍니다.
애틋한 건 그렇고 못난이들의 인생이 다들 그렇듯 속이 터집니다. 사랑도 느리고 계산도 없습니다. 아휴! 그래서! 못난이들이 됐겠거니! 화도 납니다. 그래서 돌고 돌아 이들을 지켜보면 순수함만을 느낍니다.
성격 급한 저는 중도하차할뻔했습니다. 고구마를 물 없이 3개는 먹는 듯했습니다. 영화의 전개가 느리거나 답답한 것도 아닌데 그랬습니다. 저런 답답이들하고는 상종을 못하겠는 성격 탓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요. 이들의 느림의 우정과 사랑과 애틋함이. 마지막에 다다를 때 더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참 이상하죠.
모지리들의 사랑 이야기 뒤에 숨겨진 박민규 작가의 의도는 실제론 장중합니다. 중엄 하죠.
외모 지상주의와 자본주의 혹은 물질주의에 대한 비평입니다.
외모란 무엇일까요? 참 친숙하지만 낯설기도 한 단어입니다. 외모는 타고난 사주 같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외모에 따라 운명이 정해지기도 하고 잘나가고 못나가고도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주를 바꾸기 위해 외모도 성형을 하죠.
일반인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외모의 정의와 경록의 정의는 달랐습니다. 너희들이 못생겼다고 판단하면 나도 못생겼다고 판단해야 돼? 내가 생각하는 내 여자친구의 얼굴에는 빛이 난단다. 경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생각에 변화가 없습니다.박민규가 생각한 80년대의 외모지상주의는 여전히 그리고 미래에도 바뀌진 않을 겁니다. 어쩌면 미모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그 박민규의 생각이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외모지상주의, 외모차별주의 등등. 참 나쁜 일이죠. 그런데요. 인간은 외모에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본능이 세대를 이어가게 로직화 된 동물이니까요. 외모, 능력, 자본 이런 것들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파반느'와 같은 영화를 볼 땐 세속적인 저를 버려두게 됩니다. 아 맞아. 저게 정답이긴 하지. 2시간 남짓한 영화를 보면서 세속주의를 버리는 가면을 쓰게 됩니다. 그게 행복이자 따뜻함이란 거는 아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는 그 '탈'을 쓰고 2시간 동안은 따뜻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장중함을 줍니다. 아직 여운이 남아 있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처럼요.
댄스의 은유적 표현 중에 '라스트 댄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중, 고등학교 졸업식 외에도 졸업식 무도회를 따로 여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이때 헤어지기 싫은 사람이 이성에게 마지막 춤으로 데이트를 신청하는 문화가 생겨 last dance라는 은어로 시작됐다고 하네요.
영화를 다 보고 파반느의 뜻을 보고 춤곡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니 라스트 댄스가 생각납니다.
사랑할 줄 몰라서 떠났던 김미정에게 진실로 사랑을 고백하는 경록의 춤사위.
경록에게 진정한 사랑을 말하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김미정의 춤사위.
경록과 미정의 사랑스토리로 삶을 개척하고 둘의 사랑을 기록해 나가는 요한의 춤사위.
못난이들의 서로를 향한 라스트 세레나데이자. 꾸밈없는 사랑 고백.
느리고 계산 없어서 답답했고. 처음이어서 어려웠기 때문에 낯설었고. 시간이 지나고 경험해 보니 그저 평범했던.
그래서 소중했고 놓치기 싫었던 그 사랑.
적적한 여운이 아직도 감도네요.
다들 재밌게 보셨나요? 어떻게 봤나요?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매거진에 담을 리뷰들은 이제 몇 가지 질문을 담아볼까 합니다.
1. 영화를 보고 어떤 감정이 들으셨나요?
2. 책을 보신 분이 있으시다면 그때의 여운과 영화 '파반느'를 본 후 여운이 어떻게 다르나요?
3. 어떤 부분이 답답했고. 어떤 부분이 애틋했으며. 지금은 어떠신가요?
고기능 ADHD로서 이 영화를 본 방법론에 대해서도 몇 가지 남겨보겠습니다.
1. 내가 읽었던 소설인데 어디 가서 줄거리를 말하지 못하면 콘텐츠 리더로서 볼품없으니 영화라도 빡 집중해야겠다.
2. 사랑전문가라고 나불거리고 사는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하면 바보다.
이 2가지 생각으로 초집중하면서 영화를 보다 보니 영화에 빠져버리게 됐네요. 혹시 저와 같은 증세 있으신 분들은 이렇게 영화에 집중해 보세요.
댓글과 좋아요 팔로우 부탁드리겠습니다. 재밌는 리뷰로 다시 글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