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은 혹독한 겨울의 아픔이 있어야 더 찬란하다.

봄은 과연 찬란하기만 할까. 『채식주의자』를 읽고

by 오후삼십팔분

글솜씨도 없는 사람이 운 좋게 브런치작가가 됐고. 또 이런 글까지 써야 되나라는 내적 허용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는 게 걱정이 됩니다. 똥글 일지 수준 낮은 글일지 아니면 생각을 공유하는 글일지 고민이 되지만, 끊이지 않을 이 생각을 안 담아내기에는 너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채식주의자』를 사랑하고 한강 작가를 존경하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과는 조금 동떨어진 아니 사실 책의 기록과는 정 반대의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서 전혀 다른 얘기로 글을 적으려 합니다.


그래도 책에 대한 얘기는 조금 해야겠죠.


영미출판계의 초창기 『채식주의자』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고 한다. ‘too literary(너무 문학적이고), too heavy(너무 무겁고), too dark(너무 어둡다)'라며 다소 의아하게 평가절하했다(이후 점점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한다).


10년 만에 순수 문학 소설을 읽었다. 어떤 책으로 내 소설을 다시 시작할까 고민했다. 아 맞다. 노벨문학상. 한강. 도서관에서 바로 발견한 책은 이 책이었고. 즉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나로선 집중이 어려웠다. 다소 난해하고 폭력적인 구간에서 미간이 찌푸리는 구간들이 있었다.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면서 조금 의외스럽다고 생각까지 했다.


"너무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건데, 조금 가벼운 소설을 볼걸 그랬나"


마음으로 다시 고쳐먹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문장을 다시 읽고, 이해가 되지 않은 문장은 ai에 검색했다. 이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여러 측면에서 고민해 달라고 했고. 최대한 이해하고 넘겼다. 사실 인생에서 여러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문장마다 문단마다 의미를 탐닉하며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는 흘러가는 대로 책을 읽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모든 아픔은 서서히 혹은 빠르게 발전해 가며 변해간다. 아픔의 기록을 나무가 되어가는 설정으로 풀어가는 한강 작가님의 스토리텔링은 기가 막혔다. 왜 위대한 작가인지 알게 됐다.


(줄거리를 최대한 말하지 않으려는) 내 독후감은 책과 현실을 비교하며 생각을 정리하기다. 그래서 책에 대한 내용을 적기보단 책을 읽고 난 내 생각들을 풀어내 정리하고 싶다.


디테일한 책에 대한 내용은 독서를 권하고 아니더라도 나무위키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책을 읽고 나서 2가지 생각이 맴돈다.


하나. 찬란한 봄은 혹독한 겨울의 아픔이 있어야 온다.

둘. 급격한 변화에서 파생된 부작용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나. 찬란한 봄은 혹독한 겨울의 아픔이 있어야 온다.

후회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본질적인 감정이며, 후회할 줄 아는 능력이 우리를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끈다. 다니엘 핑크의 저서 『후회의 재발견』에 나오는 문장이다. 후회는 결함이지만 인간을 더 입체적이고 발전적으로 만드는 동력이다.


한국 사회 문화는 점점 더 발전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행했던 폭력적인 가정교육. 남성이 여성에게 했던 폭력.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아무렇지 않은 듯 행해졌던 학교폭력 등. 사회적 시선의 변화와 그에 따른 법규의 재정립 그리고 인권 존중의 분위기가 지난 폭력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내 폭력의 비폭력화는 모든 과정이 후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부모의 후회, 남성들의 후회, 교육계에 있는 자들의 후회. 그 후회의 크기와 농도가 각각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그게 레이어가 쌓이고 그 레이어 위에 쌓인다. 점점 후회는 참회로 이어지고. 분위기의 변화에서 시작해 문화의 변화 그리고 법제화까지 이뤄진다.


개선은 아픔이 있어야 가능하다. 발전은 분명 희생이 존재했다. 찬란한 봄은 혹독한 겨울의 아픔이 있어야 오듯. 한국 사회는 아픔의 현장에서 수많은 희생의 기록들이 겹겹이 쌓여 좋은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강 작가님의 이런 기록이 있기 때문에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빠르게 전파되는 건 아닐까.


둘. 급격한 변화에서 파생된 부작용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런 생각과 반대로. 달라진 현재 상황에 대한 생각들도 있다. (청개구리 심보일지도 모르겠다) 가정 폭력이 요즘 있는가? -> X

남성이 여성에게 육체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게 빈번한 일인가?-> X

교사들의 학교폭력이 요즘 있는가? -> X


(여기서부터는 객관적이지 못한 제 생각들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만 제 생각이 객관적이라는 생각도 있긴 합니다) 세상은 변했다. 교사라서, 부모라서 아이를 체벌할 수 없다. 진심 어린 훈육이 가능한 시대가 됐나? 세상의 역행은 문제를 낳았다. 언어적인 훈육도 누군가의 잣대에서는 체벌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아이들의 인성이 옛날보다 훨씬 다채로워졌다. 정돈되지 않은 것 같고 개인적인 것 이상의 이기적인 모습도 많이 보인다. 외동의 시대, 개인주의의 시대가 만들어낸 모습일 수도 있다. 다만 개인적인 것을 떠나 이기적이고 유별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훈육하기 어려운 세대가 만들어낸 역설적인 역행을 우린 지켜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바뀐 변화에서 생긴 부작용들을 체감하고 있다. 책이 어려웠던 이유는 내용들의 인지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재 상황과의 부조화이지 않았었나라고 생각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건 이제 뉴스에 나올법한 스토리가 되어가고 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도 마찬가지다.


책이 가져다주는 생각의 파생으로 머리가 조금 아팠다. 영혜의 아픔과 폭력의 희생 아래에 숨죽여 생존해 갔던 존재들에게 책은 따스한 기록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다. 책의 아픔과는 별개로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그 상황이 오롯이 긍정적이기만 한가?'에 대한 생각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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