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스러운 태정태세문단세 스토리
장손인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어디 성씨인지, 어떤 파인 지를 외우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우리 강아지 무슨 파여~"
"귀래공파"
유년시절 아무것도 몰랐던 내 조상의 뿌리가 역사의 한 장면에서 되게 중요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계유정난과 조선시대 초기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아주 지대하게.
나는 신말주라는 사람의 후손이며 고령신 씨의 귀래정공파의 세손이다. 사람들은 신숙주에 대해서는 알아도 신말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모른다. 신장이라는 사람의 셋째 아들이 신숙주이고 다섯째 아들이 신말주다. 신말주는 신장의 아들로선 막내라고 알고 있다
조상의 뿌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신말주와 신숙주는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길을 선택 했다.
단종(박지훈 역)이 왕위에 물러나자 신말주는 벼슬을 사임하고 물러나 전라도 고창에 귀래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거기서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물론 후에 형 신숙주의 설득 끝에 다시 조정으로 복귀는 하셨다고 알고 있다). 신숙주는 모든 이들이 알다시피 세조(수양대군)를 택했다.
"오 내 직계 조상 멋져."직계조상인 신말주의 행동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소위 간지가 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와 계유정난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주 쪼끔 역사 덕후에 가깝다. 조선시대 전체 역사를 좋아하지만 '테정태세문단세'는 특히나 재밌다. 여러 사극을 봤지만 가슴속에 남아있는 사극은 관상, 육룡이 나르샤, 사도다. 3개 중 2개가 무려 이 시절의 내용이다. 이런 나에게 '왕과 사는 남자'는 다시 읽는 나의 조상들의 한축이자 나만의 비밀스러운 스토리다.
아래에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근데 역사 영화도 스포일러 주의를 붙이나요? 단종 죽습니다!)
영화는 유해진이 다했다.
장인어른, 장모님, 와이프와 영화를 보고 모두가 이구동성 말한 건
"유해진 어쩜 이렇게 연기를 잘해?"
유해진 형님의 연기력은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무슨 신들린 사람이 혼자 영화 전체 군데군데 부족한 구멍을 채워줬다. 연계성이 부족할 때쯤 유해진이 나타나 본인의 연극쇼를 보여주며 "영화 괜찮죠? 에이 헤헤헤 우리 영화 소문 좀 많이 내줘~ 나 열심히 하잖아 안 그래요?"라고 말하는 듯했고. 이상한 cg나 맥락상 어색한 부분들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속사포같은 대화를 뱉어내며 뻘건 얼굴로 "혹시 저 이번에 트로피나 상 뭐 받을 거 있을까요?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열연을 하며 영화계 관계자들에게 되묻는 것 같았다. 영화의 평을 보면 '부족한 연출이 있는 거 같았지만 좋은 스토리였고. 유해진의 연기는 너무 좋았다'라고 하는 느낌의 댓글들이 많은 것 같다. 딱 이 분위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튼 유해진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개인적으론 '만약에 우리'가 아직까진 올해의 영화이지만 최고의 배우, 연기력을 따지자면 유해진 형님이다.
https://brunch.co.kr/@afternoon38/2
아쉬웠던 부분
단종이 너무 어른스럽게 나왔다는 부분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실제로 단종은 쌀쌀맞고 정이 없었다. 사육신의 망령에서 벗어나 조정에 권좌를 탈환하려고 하는 단종의 모습이 실제와 같았을까? 역덕후들 입장에서 여기서부터 뭔가 느낌이 싸했다. 단종의 마지막 모습을 다르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장항준 감독은 역사적 한 사실에 집중했다고 한다. 정확한 구절이 생각이 나지 않지만.
"단종의 시신을 엄흥도가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
연출에서 단종은 시월의 마지막 잎새와 같이 애처롭고 쓸쓸한 존재로 투영시켰으면 어땠을까? 지극히 슬픔과 두려움에 떤 왕으로 보여주는 것 말이다. 한 서린 왕으로 백성들이 어여삐 여기는 아들 같은 왕으로 비추었으면 어땠을까? 백성을 지키려는 약하지만 마음만은 착한 왕과 그 마음을 알아주는 엄흥도의 충심을 연계하려는 시놉시스의 목적성은 충실히 따랐다. 다만 단종에 대한 행적이나 이홍위 배역의 박지훈 배우가 생각보다 단종의 한 서린 연기와 당차지만 운명의 기로에 선 폐위된 왕의 역할을 100% 연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약한 영웅에서 보여줬던 초점 잃은 광인의 눈빛이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공포에 절여진 한 학생의 광폭의 분노를 폭발했던 눈빛 연기가 단종에는 어떨까 기대했지만 다소 아쉬웠다는 생각이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애매한 백성을 위한 마음을 지키기 위한 왕의 포지션이 박지훈 배우도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4명의 왕에게 영향을 준 한명회
뿌리의 자부심과 별개로 사실 나는 한명회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니 사실상 조선에서 가장 사랑하는 인물 중 하나다. 입체로운 캐릭터에 조선의 왕을 4명이나 메이킹한 신하다. 두 딸을 왕에게 시집을 보냈고. 수양을 왕으로 만들었고. 단종을 내리치게 만든 자다.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단종의 비극과 수양의 쿠데타에 대한 반감이 심한 사람들에게는 한명회는 천하의 죽을 놈이겠지만 나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를 대상으로 웹소설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나중에 만들게 되면 꼭 브런치에도 공개하겠다.
한명회를 지금껏 가장 섹시하게 표현한 사람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드라마 '한명회'의 이덕화, '관상'의 김의성 등 여러 배우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김의성의 한명회를 가장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한명회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한명회는 실제로 잘생기고 덩치가 컸다고 한다. 간신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중엄 했다 증언되는 역사적 자료들이 많다. 그런 그를 처음으로 제대로 비춰준 작품이 아닐까. 유지태의 한명회는 악랄함, 근엄한 이 모든 것을 하나에 담으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유지태 배우는 그걸 제대로 보여줬다. 유해진과 유지태의 유유커플이 이 영화의 연기력에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볼만하다. 하지만 사실 500만? 1000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한국영화 흐름에서 '왕과 사는 남자'는 솔직히 수작에 가깝다.
왕과 사는 남자 역사적 사실 정리
1. 엄흥도의 단종 시신 수습 (사실이다)
2. 단종은 실제 활을 잘 쐈다. 다만 정치 군사적 목적보다는 10대 초중반 소년들이 비슷한 나이대에 스포츠에 관심 갖는 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3. 수양대군의 동생 금성대군은 실제 단종을 복위하려는 운동을 했고. 사약을 받을 때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절을 하는데. 금성대군은 "내 임금은 북쪽에 계신다."라고 말하며 한양을 향해 절을 거부하고 단종이 있는 영월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ps. 요건 좀...
개인적으로 아래 '별점 테러'는 영화사의 마케팅 홍보 수법 아닐까 생각한다. 약간의 그로스 마케팅 같은? 단종이 그렇게 애달프지 않다. 오히려 엄홍도가 더 슬프다. 엄홍도의 마지막 열연에 슬퍼 눈물이 나지. 단종의 죽음 때문에 수양이 밉거나 한명회가 증오스럽진 않다. 요즘 영화업계는 이 정도의 그로스마케팅은 해야 살아남는다는 사실에 경외스럽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한데. 뭐 어쨌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https://v.daum.net/v/20260206132536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