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너머

by 오후의 책방

문자를 만들기 전 사람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인류 문명의 초기 문자는 그림을 닮거나 간단히 표현하는 데에서 시작했습니다. 상형문자에 소리값과 의미가 더해지기도 했어요. 그리고 소리 글자가 만들어지면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무한에 가까워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저 가까와졌을 뿐이었습니다. 언어는 보이지 않는 것, 오직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영혼의 세계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말하려면 할수록 겉을 맴돌 뿐입니다.

그래서 시와 노래가 탄생했습니다. 시는 심상을 전하고 운율은 감성을 전합니다. 성자와 수행자들은 영혼의 세계를, 진리의 실상을 소리로 응축했습니다. 옴 또는 훔과 같은 진언입니다. 진언이 모여 노래가 만들집니다. 그것을 진리의 노래 만트라, 주문이라 합니다. 주문이 모여 경을 이룹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가장 위대한 노래는 주문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뮤직차트에는 사랑을 빼앗고 버리는 대중가요로만 채워집니다. 진짜 노래는 잃어버렸어요. 수행가들 사이에서도 수행이라고 하면 화두선이나 명상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없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나 봅니다. 하지만 수행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에는 자신도 포함됩니다.

노래와 춤은 원초적인 것입니다. 우주는 노래이고 춤입니다. 끝없이 율동하는 생명의 노래, 춤입니다. 바람의 빛깔을 볼 수 있다면, 바람이 나무와 손잡고 추는 춤을 볼 수 있다면, 수억년 전과 미래가 바로 ‘여기’에서 왈츠를 추고 있는 것을 본다면 아마 당신과 내가 하나였음을 '알텐데-'


언어는 배와 같습니다. 피안의 세계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배와 같습니다. 부처님은 손가락과 같습니다. 타고 가라는 배에 매달리고, 가라고 가리킨 손가락만 쳐다보며 서로 아웅다웅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자와 철인과 현인들이 출현한 차축시대 이래 수천 년 그리 살아왔습니다. 손가락이 아니라, 배가 아니라, 그 너머에 한 발 내 딛었다면 자본이 인간 위에 서고, 정치가 도덕 위에 서서, 참과 거짓이 뒤엉켜 참과 거짓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에 빠져 말에 허우적거리지는 않았을텐데-


-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읽는 중에 낙서



fairy-tales-4057425_1920.jpg 도착하려면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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