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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_선택권은 내게 있습니다

생활언어사전

by 오후의 책방

사내 녀석 둘이 같이 있으면 아무리 말려도 장난을 멈추질 않습니다. 몸도 힘도 자그마한 작은아이는 형이 하는 놀이를 따라가기 벅찰 텐데도 빠질 빠질 땀을 흘리며 이기려 해요. 덩치도 힘도 그보다 좀 더 큰 첫째는 힘조절을 못해 잠깐 방심하면 동생을 울립니다.


가만히 있어도 등이 흠뻑 젖는 무더위에도,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어벤저스처럼 날아다닙니다.

"아야! 형아가 나 때렸어. 앙!"

더위를 식히려 샤워를 하는 잠깐 사이, 큰아이가 또 둘째를 울렸습니다.

"조심해야지!"

반사적으로 잔소리를 하며 방문을 열렸는데, 어라? 문이 열리질 않습니다.

아빠는 노크.jpeg
"아빠는 노크를 두두리세요!"

'옷'인지 '아빠'를 그린 것인지, 옷 입고 들어오라는 뜻인지 애매모호한 그림 옆에 "똑똑"이라고 써 놨습니다. 이것 참! 노크를 두두리세요, 라니. 철자를 틀리는 건 절 '닯았나봄니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길래 결국 '두두' 드렸습니다.

"똑똑"

큰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문을 열어줍니다.

"문을 왜 잠갔어, 아빠가 잔소리할까 봐 닫은 거야?"

"응, 히~"


이전에도 여러 번 문을 잠그고 놀길래, '혹시라도 너희들 놀다가 다치면 아빠가 얼른 들어가서 봐야 하니 문은 잠그지 말고 놀아.'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문에다 이렇게 써붙여놨으니 뭐라 할 수가 없더군요. 어쨌든 '노크'를 하면 열어주겠다는 뜻이니까요.


선택권은 이제 아이에게


아내도 저도 대구사람이라 그런지 말이 직설적입니다. 직장 때문에 신혼살림을 대전에 차리고 얼마 후, 아내가 말했습니다.

"도대체 한다는 건지, 안 한다는 건지. 도통 속을 잘 모르겠어."

대구사람이면 대개는 이렇게 말하죠.

"됐나? 됐제! 그럼 한데이!"

훅치고 들어오는 대구사람의 말투가 충청도 사람에겐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대학교 때 논산출신인 친구는 제가 질문할 때마다 밥을 뜸 들이듯 둥그런 눈을 이리저리 굴렸습니다. 친구는 '음~, 음~'만 돼 내었어요. 그럼 저는 다음 질문, 또 그다음 질문으로 취조하듯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국 침묵 혹은 대답 하나를 겨우 건질 때가 많았습니다.


대화도 노크와 비슷한 것이군요.

노크를 하면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나지막이 '누구세요'라고 묻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가 누구라고 말하면 열어줄지 말지는 그 사람 선택이죠. 아이가 이제 노크를 하라고 합니다. 문을 열지 않으면 아빠가 화낼 거라는 엄포는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대답조차 하지 않더군요. 그래도 노크를 하면 웃으며 문을 열어준다는데, 얼마나 사랑스럽나요. 제 아이도 저의 것이 아닌데, 하물며 다른 사람은 어떨까요?


대답을 들으려면 기다려야 해요. 답을 할지 말지는 온전히 그 사람 몫이더라고요. 때론 질문이 마뜩지 않을 수 있고,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노크를 하란 말은 함부로 들어오진 말라는 뜻이에요. 내 공간, 내 마음과 생각과 삶의 공간을 존중해 달라는 의미죠.

훅! 들어오는 질문을 자주 봅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기자의 질문, 일거수일거족을 감시받는 유명 연예인들, SNS의 댓글들, 관심을 받고 싶지만 또한 지나친 관심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우리는 다른 모든 타인에 대해 무방비상태입니다.


벌컥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서는 지나친 관심증에 '노크'라는 예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두두'리고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논산 친구도 제가 참고 기다리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음... 그건... '하고 말을 시작합니다. 대답을 할지 말지는 그 사람 선택입니다. 물론 항상 대화가 기대한 대로 되는 건 아니더군요. 한 번은 참고 기다린 끝에 돌아온 대답이 이랬습니다.

"아녀. 됐어!"

대답할 선택권은 상대에게 있다! 이 말을 생각하며 꾹! 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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