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머니는 제 뒷모습을 보시고도 화가 났는지 아닌지 아신다고 하셨지요. 화가 나면 뒤머리부터 잔뜩 골이 나기 때문인데요.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잘 내는 제게 종종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 했다."
욱하는 성질을 죽이고 냉정하게 생각하라는 말씀이고,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 낼 일은 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아직도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한번씩 수틀리면 독설을 밷고야마는 성미는 아무래도 제가 평생 고삐를 움켜쥐고 잘 다뤄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많습니다. 갑질하는 고객, 진상 부리는 손님, 근태가 불량한 직원... 그래도 그 사람들이야 내게 돈을 주고, 내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들이니 곱게 생각하고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참기 어려운 불의는 따로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봉지 2장을 가져갔다고 고발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점주의 속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어른이 할 짓은 아닙니다. 환자를 미루고 돌리다가 거리 위에서 사망케한 사건을 들었습니다. 병원 속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그건 의사가 할 짓이 아닙니다.
공자孔子에게 정치를 하시면 제일 먼저 무얼 하시겠냐고 자로가 물었습니다. 정명正名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정치를 하면'이라는 질문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 함의는,
결국 사회의 여러 문제는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문제이고, 또 정치를 잘해야 사람들이 각자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겠지요. 어쩌면 요즘 이렇게 화낼 일이 많은 이유는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방관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인에게는 화를 좀 내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참을 인자는 마음이 칼날이 박혀 있는 모양입니다. 큰 고통에서도 마음이 안정되고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참는다는 것은 불의를 보고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바로 잡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견뎌내는 것인가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고 살아갑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 힘을 가진 사람들은 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좀 알았으면 합니다.
2017.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