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김범석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엄마,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 아무것도 없지.“
아무것도 없는 죽음 이후란, 상상하기 어려웠어요. 아무것도 없다는 건 생각조차 없으니까요. 제게 그려진 이미지는 캄캄한 어둠,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오직 나만 발가벗겨진 채로 서 있었습니다. 그 시기, 저의 일기장은 온통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사춘기가 빨리 찾아왔나 봐요. 이후 제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가 가장 큰 삶의 주제였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가장 고유한 특성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인과법칙이나, 본능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기투하며, 즉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향해 스스로 자신을 “던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의 선택이 나를 결정짓는 것이죠.
사람은 인생의 어느 한 시점, 눈앞에 닥친 당장의 문제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나? 내가 잘 살아왔나, 문득 삶이 허망하다고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불안이 엄습할 때 우리는 자신이 그동안 추구해온 세간적인 가치들, 부자가 된다거나, 어떤 지위에 오른다는 것이 허망한 것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불안의 순간’은 바로 죽음입니다. 오늘 누구보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죽음을 선고하고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있는 이가 쓴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을 어느 부분을 낭독할까 무척 고심이었어요. 낭독을 하다가 울면 안되는데, 울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가 찾기 힘들었습니다. 저자 김범석님이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문장이 있는데요. 이 문장을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달리 보면 특별한 보너스와 같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 “자, 당신의 남은 날은 00입니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의사 김범석님이 기록한 마지막 순간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