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by 오후의 책방

저녁 설거지는 내 담당이다. 매일 늦게 들어오니 그나마 그거라도 해야 덜 미안하다. 아내는 설거지거리를 쌓아두는 걸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어머, 바빠서 점심때 것도 못 치웠네. 자기 종일 일하고 힘들 텐데 내가 할게, 나둬'라고 하는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잠깐 딴 일을 보고 있으면 부엌에서 그릇 놓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걸 보면 내 짐작이 맞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니까, 하던 일을 내려놓고 팔을 걷어붙인다. 절대로 무서워서가 아니다. 사랑해서 그런 거다.


아이들과 공원에 갔었나 보다. 빨주노초- 겹겹이 소풍용 컵이 나와 있었다. 덮개를 여는 순간 '까만 무언가'가 손가락 위로 뽀로로 기어올라왔다. 살짝 소름이 돋았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고 유심이 살폈다.

개미다.


네가 여기 왜 있니? 개미가 내 말을 들었을 리 만무하지만 순간 녀석도 멈칫했다. 두 개의 더듬이가 내 눈을 향해 고사리 아기 손마냥 허우적거렸다. 옴마! 여기가 어데유? 여긴 내 집이 아닌디! 워쩐다냐!라고 들리는 듯했다. 우리 집이 대전이니까 이 녀석은 충청도 사투리를 쓸거다, 분명.


여보, 얘가 여기까지 달려왔네. 지금 밤 10시나 됐는데, 얘가 집에 찾아갈 수 있을까? 그냥 우리가 키우면 안 될까, 밥은 내가 꼬박꼬박 줄게. 지금 애 내보내면 죽을 것 같아. 허우적 대던 개미 더듬이 마냥 내 손도 허우적거리며 설명했다. 속에서 또 다른 내가 말했다.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이람, 부끄럽다, 그만해.

아내의 대답은 단오 했다. 밖에 보내요. 알아서 할 거야. 이 여자, 생각보다 냉정하다.

거실에서 서성였다. 개미는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매우 당황해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재빠르게 팔을 기어오르거나 떨어지거나 할 텐데 그 좁은 두 손가락 사이만 왔다 갔다 하며 더듬이를 허우적거렸다.


저기 통에서 넣어서 키우면 안 될까? 얘 분명 죽을 것 같아. 지금 밤인데 어떻게 집으로 가? 그리고 공원이랑 여기가 거리가 얼만데. 어떻게 찾아가?


아내는 일관성까지 있었다. - 안돼, 자기야. 밖으로 보내.

이쯤 되면 내가 포기해야 한다. 내가 아내를 이겼던 건 결혼을 밀어붙였을 때 밖에 없다. 아니! 착각이다. 그조차 지금 생각해보면 집 한 채 없이 아무것도 없었던 나를 아내의 말대로 '사람 하나 믿고' 선택해줬던 것 같다. 그래! 포기하자. 개미는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선 살 수 없어. 내가 아무리 아껴주고 맛있는 걸 챙겨줘도 더듬이를 맞댈 친구가 없다면 더듬이를 허우적거리다 죽을지도 몰라. 그래 맞아. 보내줘야 해. 친구가 있은 곳으로, 집으로.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열고 손가락 끝을 세웠다.

- 야, 정신 바짝 차려. 세상은 위험해. 내가 던지면 곧장 오른쪽에 공원이 있으니까, 미친 듯이 가는 거야. 절대 포기하면 안 돼, 넌 이제부터 [개미 103683]이야. 파이팅! 힘내!

103683은 눈치도 없이 손가락 끝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 알아들을 리 없지, 폈던 손가락을 굽히고 손등에서 여전히 허우적대는 103(이하생략)이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잘 가! 103'

"휴욱~~~~~~~~~" 입바람과 함께 103호는 풀 숲으로 날아갔다. 설마 내 입냄새에 기절하진 않았겠지?

정신 바짝 차려 103!


생애 처음으로 만난 개미 103683과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루가 지난 지금쯤 103은 집에 도착했을까? 아니면... 에이! 아냐! 갔을 거야. 그렇게 믿고 싶어. 친구랑 더듬이를 맞대며 지독한 사람 입냄새의 기억을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숲에서 해가 뜨는 쪽에 200m쯤 냄새가 상당히 위험한 손가락이 있다, 가지 마라'라고-


자! 나도 이제 글 다 썼으니, 퇴근하련다. 엉뚱한데 들어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설거지... 아니~, 아니~ 사랑하는 가족들 보러. 더듬이 같은 두 팔로 따뜻히 안으러-


미주 1 : [개미 10368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 등장하는 주인공 개미, 나중에 동료들이 애칭으로 103이라고 줄여 부른다. 내가 직접 읽어보니, 애칭이라기보다 힘들어서 줄인 게 분명하다.


미주2 : 아내와의 대화는 제 기억과 아내의 기억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밝힙니다. ㅋㅋ~설거지에 관한 것도요. 아내는 무척 다정한 사람이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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