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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Jun 13. 2021

만약 하이데거가 지금 대한민국 산다면 주식투자를 했을까


https://youtu.be/-jN8EUmjhk0


하이데거와 주식이 무슨 관계가 있냐구요?

관계가 있어요. 바로 ‘불안’이에요.


우선, 질문부터 하나 해볼까요? 만약 지금 하이데거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주식투자를 했을까요? 성급히 결론내지 말고, 우선 이 영상을 보면서 같이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죠.


먼저 불안과 주식투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코스피 거래대금에서 개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48%에서 작년엔 65%로 늘었다고 했어요. 특히 새 투자자의 대부분이 20~30대라는 점은 생각해 볼 지점이에요.

 e-나라지표 사이트에는 여러 국가지표를 공개하고 있어요. 2021년 5월 청년실업률을 보면 9.3%에요. 전체 실업률 평균이 4%니까, 2~30대 실업률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구직활동을 포기한 68만 2000명 중 절반이 20~30대라고 해요. 얼어붙은 취업시장, 치솟는 부동산 가격, 상대적인 박탈감과 분노가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영끌’. 빚을 내서 투자한다는 ‘빚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어요.


"한국에서 월급만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 복권을 사거나 주식을 하는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다"

“집은 은행이 사주는 거지, 내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는 말은 농담이 아닌 웃픈 현실이에요.


 예전엔 주식이나 부동산 수익을 불로소득이나 투기처럼 여겼다면 이젠 금융 투자는 자산을 불리기 위한 방법으로, 미래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고정수입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요즘 대한민국은 주식에 미친 나라 같아요. 예전에 부동산에 미쳐있었던 것 처럼요. 방송, 출판, 유튜브, 심지어 예능에서도 주식투자를 말해요. 이런 걸 보면 점점 더 불안해지죠.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요. 미래를 위해 무언가 하긴 해야 하는데 딱히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주식이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시에 투자가 실패할까 두려워요. 주식을 하는 순간부터 차트에서 눈을 뗄수 없다고 해요. 이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 개개인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금융과 주식에 대해 공부하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도무지 이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도대체 이 불안이란 감정, 기분의 근본 원인은 뭘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왜 불안은 반복되는 걸까? 취업을 하면 불안은 사라질까? 주식대박을 치며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까? 로또 1등이 되면 불안은 사라질까?


아! 진짜 사라질 것 같아요. 진짜, 우와 로또 1등되면 행복할 것 같아요.

잠깐, 아이구. 미안해요. 제가 잠깐 미쳤었나봐요.


 하이데거와 불안에 대해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해요. 이렇게 어렵게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얼 세대 신입사원의 50.2%가 1년 안에 일을 그만둔다고 해요. 아니, 왜? 왜 일까요?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대기업에 취업을 했는데, 3년을 다녔지만 정작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회사를 위해 희생해야하는 것, 회사의 나사못처럼 소모되는 삶은 진짜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비록 불안하고 힘들더라도 나의 브랜드, 나의 가치를 스스로 찾고 싶다.‘


 스스로가 가치를 정하는 시대,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기꺼이 다시 불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어요. 사람은 안정을 찾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불안’과 마주해 현재의 나를 초월하려고 해요.

진짜 나를 찾으려 해요. ‘불안’이란 기분, 감정은 이렇게 양면적인 모습이 있다는 거에요.


자 이제 하이데거와 불안을 살펴볼께요. 하이데거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라고 규정했어요. 즉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물을 수 있고,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진 존재라는 거에요.  저기 개가 ‘나는 왜 개인가?’라고 묻지 않아요.


... 음.. 자 어쨌든


하이데거는 이런 의미에서 사람을 ‘현존재-다자인’이라고 규정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던져져 있는 세상의 가치에 따라 그것을 실현하데 온 힘을 바치며 살아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부자가 되는 것,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 것, 이런 것들이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충만하게 해 줄 것들이라고 생각하죠. 하이데거는 세간의 가치를 자신의 진정한 가치로 착각하면서 사는 방식을 ‘비본래적 실존’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이렇게 진정한 자기를 상실하고 세상 사람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살다가 문득 문득 삶이 허망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하이데거는 이런 기분을 ‘불안’이라고 불렀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진짜 이것 때문일까.’


‘불안’을 마주하게 되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 있어요. 바로 죽음이에요. 이에 대해서는 다른 영상에서도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생략하도록 할께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이실거에요. ‘맞아 죽음 앞에선 누구나 다 철학자가 돼! 자신의 존재를 진지하게 묻게 되지’


 이 불안이라는 기분을 통해 삶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묻기 시작해요. 만약 우리가 불안에서 도피하지 않고 불안을 흔쾌하게 수용하면서 세간적인 가치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우리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 삶의 과정들, 주변 모든 것이 진짜 의미를 드러내 준다는 거에요. 불안이 경이로움으로 바뀌는 것이죠.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당신 자신

돈이나, 물건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당신의 본래 모습

어떤 사회나 기업의 수단이나 도구로서 소모되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진짜 존재의 이유를 깨닫는 것이 우리 인간-현존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것이죠.


자, 처음 드렸던 질문 여러분 나름 답을 찾으셨나요? 하이데거가 만약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다면 주식투자를 했을까요? 영상 에필로그에 제 생각을 말씀드릴께요. 그리고 절대 제 생각이 정답이 될 수 없어요. 제가 그럴 자격도 없고요. 오히려 저는 여러분의 생각을 기다리겠습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보신 분들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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