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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Jan 17. 2022

바다를 바라보며

처음 바다를 마주했을 때

깊고 어두운 바다는 두렵지만 설레었어

이 파도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나는지 궁금했지

끝없이 펼쳐진 대양 한가운데,

바다가 시작된 곳에서

어마하게 큰 거인이 물장구를 치고 있을지도

바다 아래 땅이 숨 쉬듯 들썩이고 있을지도

이야기 속 물고기 곤鯤이

고래처럼 물을 뿜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이란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것이라며

파도는 기압과 기류가 일으키고, 

폭풍은 성난 용왕님이 아니라

열대성 저기압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할 때

아니 난 어쩌면

바다에서도 바다를 보지 않았던 것 같아

너와 함께 걸으면서도, 생각은 다른 곳에 묶어두고

파도에 지워진 발자국처럼 너와의 추억도 지웠던 것 같아


아이를 데리고 바다에 갔어

자기 손만 한 삽으로 갯벌 속 조개를 잡는 

아이 너머,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지

파도는 밀려오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

멀리 떠나가는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

어쩌면 우린 바다를 닮았나 봐

폭풍처럼 살아가는 날도, 다시 보지 못할 순간도

내 마음의 물결이었다고

모두 그 안에서 일어난 것이었다고

사라진 것 하나 없이 모두, 이 안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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