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dXIkmdgoQg?si=rWNDE1p-bUMll7Bj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의 매혹적인 걷기의 말들
《걷기의 즐거움》 - 수지 크립스
요즘처럼 일이 많고 바쁠 때, 사실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참 축복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늘 가던 길도 주변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걸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미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죠. 때로는 전혀 낯선 길을 가보기도 합니다. 이 골목을 돌면, 저 코너를 돌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설레기도 하지요.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했던 일도 산책을 하다 보면 문득 스르르 풀리기도 합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걷기』인데요. 소로는 걷기, 산책을 순례길에 비유합니다.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는 사람은 '진정한 순례자'라는 것이죠. 저희 한 가지 소망이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것이었는데요. 소로의 말처럼 문을 열고 나가면 제 앞에 늘 순례길이 펼쳐지고 있었네요. 잠깐 짧게 소로의 말을 들어볼까요?
'어슬렁거리다'의 어원은 "중세 시대에 성지순례(à la Sainte Terre) 중인 척하면서 시골을 떠돌며 구걸하는 게으른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이런 사람들을 보면 "저기 성지순례자(Sainte-Terrer)가 가네"라고 소리쳤고, 그래서 성지순례자, 즉 산책자(saunterer)라는 말이 생겼다. 성지순례 중인 척하는 사람들을 부랑자나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진정한 산책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산책자의 어원이 '땅 없는 사람(sans terre)' 즉 땅이나 집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 말은 특정한 집을 소유하지 않고 있지만 세상 전부가 자기 집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성공적인 산책의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첫 번째 어원을 선호하고 사실 그것이 가장 그럴싸한 어원이기도 하다.
...(중략)
걸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들판이나 숲으로 간다. 정원이랑 상가만 걷는다면 뭐가 되겠는가? 어떤 철학 학파는 숲으로 가지 않는 대신 숲을 자기들 쪽으로 끌어와야 할 필요성까지 느꼈다. 그들은 플라타너스를 심어 가로수길을 만들고, 야외 회랑에서 산책을 했다. 물론 숲으로 가서도 멍하니 발길만 옮기는 것은 소용이 없다. 나 역시 어쩌다가 정신은 따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몸뚱이만 가지고 숲을 1마일(1.6km) 정도 걷는 일이 생기면 깜짝 놀란다. 오후에 산책할 때면 오전에 일이나 사회적 의무를 기꺼이 잊어버리지만 가끔 마을 일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일이 뇌리를 사로잡아서 주변에 집중하지 못한다. 주변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산책을 하다 보면 이내 다른 주변을 보고 듣는다. 숲 밖의 일에 몰두할 거라면 굳이 숲에 올 이유가 있겠는가?
시인 박연준 님의 추천사는 시처럼 함축적이고 아름답습니다.
"먼 곳에서 이것으로 '아직도' 걸어오는 중인 옛사람들이 있다. 《걷기의 즐거움》은 그들의 건강하고 온화한 발소리를 담은 책이다 걷기는 생활을 흐르게 한다. 책을 읽다 "가장 가벼운 사람은 즐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문장에 놀랐다. 어쩌면 내가 이번 생에 유일하게 바라는 건 가벼워지는 일이 아니었을까? 무거운 영혼은 움직일 수 없다. 기쁨도 자유도 없다.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생의 축복임을 보여 주는 책을 만났다. 일상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마다 들고나가고 싶다. 오랜만에 마음이 정화되는 독서를 했다. 인생이 흘러가는 것임을 감각하고 싶다면 이 책을 곁에 두어야 한다. 읽다 보면 당신도 걷고 싶어질 것이다.
가볍게!"
이 책은 '걷기'에 대한 글을 선별해서 모은 선집입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넓게 잡아 17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영미 걷기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보여줍니다. 당시에는 여성들의 글이 발표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유색인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죠. 때문에 '걷기'에 대한 의미도 여성에게 있어서, 또 타고르의 서한집 《벵골의 모습》이나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 이야기》에 담긴 도보여행은 그 당대에 인정받는 백인 남성들이 표현했던 도보 여행과는 다른 차이를 보여주겠죠. 이런 차이점을 느끼면서 이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혼자 걸어서 여행할 때처럼 완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고,
감히 표현하자면 그렇게 완전한 삶을 영위한 적도,
그렇게 철저히 나 자신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 장 자크 루소, 《고백록》에서
"예기치 않게 낯선 길을 걷다 보면 시간적 흐름에서 벗어난 느낌을 받는다. 순간적이긴 해도 이런 장소와 순간은 피정에 온 느낌을 준다. 긴 피정을 마친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꾸준하게 땅을 밟고 나가면서 지적인 균형감을 유지한다. 걷기와 산책의 문장들에서 발견한 자기만의 속도로 인생을 걸어가는 법! 손에 이 책을 들고 산책을 나가는 여러분의 상상에 봅니다.
수지 크립스의 《걷기의 즐거움》을 전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