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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서 즉시 벗어나는 길

루퍼트 스파이라 <사물의 투명성>

by 오후의 책방

안녕하세요. 나를 깨우는 시간 <오후의책방>입니다.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에 이은 김주환 교수의 두 번째 추천작, '루퍼트 스파이라'의 『사물의 투명성』입니다.

https://youtu.be/wOj0FfS2W8k?feature=shared


루퍼트 스파이라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가장 섬세하게 답해주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스파이라는 특히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 삶과 자아自我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대 철학자, 영성가입니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아주 간단합니다. 당신은 생각이나 감정, 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의식 그 자체'다. 이 말은 마치 거울이 어떤 모습이든 다 비추는 것처럼 우리 존재의 본질도 어떤 경험이든 알아차리고 있다는 뜻이죠.


인도의 오래된 철학, 아드바이타 베단타

아드바이타Advaita는 '불이론不二論', 즉 '둘이 아님(non-dual)'이란 뜻이고, '베단타Vedandta'는 인도 고대 경전(베다)의 마지막(우파니샤드 - 지식의 끝) 부분을 말합니다. 이 철학은 '나와 우주는 본질적으로 하나다' 라고 말하죠. 이런 생각을 정리한 인물은 바로 '아디 샹카라(Adi Shankara)'라는 철학자입니다. 8세기 사람인데요. 그는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깊은 차원에서는 모두 같은 의식에서 나온 '하나의 존재'라고 했어요. 스파이라는 이 생각을 따라, 우리 각자의 본질은 '알아차림', 즉 '의식'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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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에게 큰 영향을 미친 또 한 분은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입니다. 이분은 평생 '나는 누구인가?' 오직 이 하나의 질문만 던졌습니다. '나(진아, True Self)'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 몸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차리는 의식'이라는 거죠. 스파이라는 이 질문을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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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가 또 영향을 받은 인물은 '네사르가닷타 마하라지(Nisargadatta Maharaj)'입니다. 그는 "I Am That :나는 그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여기서 '그것'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진짜 나'를 말해요. 스파이라는 이를 좀 더 쉽게 '나는 의식이다' 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의식의 화면(스크린) 위에서 일어나는 영화 같은 것이라고 말하죠. 지난번 스파이라의 책,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에서 이 부분을 낭독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조금 덜 알려져 있지만 인도의 또 다른 전통 중에 '카슈미르 샤비이즘 Kashmir Shaivism'이 있습니다. 이 철학은 세상이 단지 환상이 아니라 의식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드러낸 것이라고 말해요. 마치 예술가가 그림을 그리듯 의식이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세계라는 무대 위에 펼친 것이죠. 스파이라는 이 생각을 받아들여서 세상도 의식의 일부이고 우리 삶도 의식이 만들어낸 하나의 표현, 파장, 율동이라고 설명해요. 제가 이전에도 종종 바다와 파도의 비유를 들었는데, 바다의 본래 면모는 거친 파도가 아니라 고요한 심연이라고 했었다면, 카슈미르 샤이비즘은 '파도도 바다의 표현이다' 라고 보다 적극적으로 '불이론(비이원론, non-dual)을 펼친 것이죠.


쇼펜하우어와 카슈미르 샤이비즘: 의지와 의식,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가?

그러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말한 의지와 표상의 개념과 헷갈리는데 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죠. 쇼펜하우어가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는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왜 괴로움을 느끼는 걸까?"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라는 답은 조금씩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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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세상의 본질은 의지(wille)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 의지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단순한 결심이나 의욕이 아니라 마치 동물이 먹이를 찾고 식물이 햇빛을 향해서 자라나는 것처럼 '끝없이 뭔가를 원하고 추구하는 본능적인 힘'이죠. 이 '의지'는 절대 멈추지를 않습니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강하게... 그래서 우리는 늘 부족하고 갈망하고 고통 받아요.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진짜 자유는 이 욕망을 멈추는 것'이다 세상은 본래 고통이며, '해탈은 욕망을 끊는 것'에 있다고 말하죠.


카슈미르 샤이비즘: 세상은 의식의 아름다운 표현

반면에 베난타 철학의 한 갈래인 카슈미르 샤이비즘은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봐요. '세상의 본질은 의식이다.' 그리고 이 '의식은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경험하기 위해 이 세상을 만든다.' 여기서 의식은 단순히 내가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요. 우주 전체를 품고, 창조하고, 바라보는 근원적인 의식, 그것이 바로 나의 본질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식이 자신을 펼치는 하나의 무대이고 우리 모두는 그 안에서 역할을 맡은 배우이자 관객인 것이죠. 해탈이란 이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나의 표현(우주가 곧 쉬바, 진정한 나)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 모든 것은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란 겁니다. 석가모니는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 그리고 그 집착은 나라는 착각에서 생긴다고 했어요. 불교는 고정된 자아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아無我라고 하죠. 우리가 느끼는 나라는 것도 이름, 기억, 감정, 환경이 순간순간 인연에 따라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비난하든 칭찬하든 그건 잠시 머물다가 사라질 파도 같은 현상이죠.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 고통도 없어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또 사라진다. 그걸 알면 자유로워진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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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가 나를 비난했을 때, 쇼펜하우어라면 이렇게 말하겠죠.

'고통이다, 이 세상은 정말 괴롭다.' '비난은 타인의 의지고, 나는 그것에 휘돌리는 존재니' '욕망을 끊고 고독 속으로 침잠하라'라고 말한다면, 카슈미르 샤이비즘은 '이 감정조차 의식의 하나의 파장일 뿐'이다. '비난도 나도 하나의 의식 안의 흐름일 뿐,' '의식을 자각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머물러라'고 하겠죠.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비난은 인연 따라 일어난 조건일 뿐이다.' '나도 상대도 실체가 없는 관계 속의 조건일 뿐이다.' '반응하지 않고 흘려보내라.' '무집착(無執)하라'라고 말할 겁니다. 루퍼트 스파이라는 분명히 '카슈미르 샤비이즘'에 가깝습니다. 이 책의 제목 『사물의 투명성』이란 사물은 고정된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의식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투명한 창'이라는 의미인 것이죠.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혹은 '왜 자꾸 같은 말을 돌려서 얘기하는 거지?' 이게 철학인가? 아니면 그냥 말장난인가? 이런 느낌이 드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가 그의 철학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스파이라의 글에는 실제로 아주 독특한 말하기 방식이 담겨 있고, 그 나름의 의도가 있죠. 번역하신 김주환 교수님은 이 스파이라의 '아름다운 영어 표현을 어떻게 한글로 번역할까?' 무척 고심이 깊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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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글

첫 번째로 스파이라는 '독자의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책을 읽을 때 논리적으로 앞뒤를 맞춰가면서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해요. 그런데, 스파이라의 글은 그 '이해하려는 습관' 자체를 흔들어 놓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의 핵심 메시지는 당신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을 '알아차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독자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할 때마다 마치 미로처럼 글의 방향을 바꾸고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요. 말이 헷갈리게 들리는 건 사실 우리가 너무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일 수 있어요.


철학이 아니라 체험을 유도하는 글

두 번째, 철학이 아니라 이론이 아니라 '체험을 유도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스파이라의 글은 이론을 설명하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독자가 책을 읽으면 어떤 순간에 '아, 내가 의식이구나' 하고 직접 느끼게 하려는 뜻인 거죠. 그러다 보니 문장이 자주 되묻거나 반복하거나 아주 독특한 어휘를 사용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인 거죠 '당신은 의식을 인식하고 있나요?' '아니면 의식이 인식 그 자체인가요?' 이런 문장은 논리적으로 따지면 혼란스럽지만 가만히 마음을 멈추고 느껴보면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울림이 생겨나기도 해요. 마치 스승님이 내 곁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며(선문답처럼) 명상을 이끌어 가던 말이죠.


'비이원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언어에 어긋난다

세 번째로 비이원론, 불이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언어와 어긋나는 특징이 있어요. 스파이라는 비이원론을 이야기하는데 즉, 세상은 나와 너, 안과 밖처럼 두 개로 나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쓰는 언어는 전부 이원론에 맞춰져 있어요. 예를 들어서 주체와 객체, 여기와 저기, 생각하는 나와 바라보는 너, 이런 구조로 되어 있잖아요. 비이원론을 설명하려면 언어를 마치 고무줄처럼 비틀어서 시작과 끝을 이어야 합니다. 마치 영화 컨택트(원제 : ARRIVAL)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언어처럼 말이죠. 표현이 애매하고 말장난처럼 들리는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말하려고 하다 보니까 생기는 일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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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이 없으면 이해도 어렵다

그리고 네 번째, '체험이 없으면 이해도 어렵다'는 점입니다. 스파이라의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말로 된 설명이 아니라 체험의 안내이기 때문인 거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아직 수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누가 '물에 몸을 맡겨봐. 부력이 널 떠오르게 해줄 거야.' 이런 말을 하면 그 말이 와닿을까요? 스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글은 기본적으로 '의식 그 자체로 머물러 본 경험'이 있을 때 훨씬 쉽게 다가와요. 경험이 없으면 문장은 자꾸만 뭔가 미끄러지는 것 같고 무슨 말인지 모호하게 들리는 거죠. 마치 시詩처럼 언어 너머를 가리키는 언어라고 할 수 있어요. 루퍼트 스파이라의 글은 표면적으로 보면 마치 되돌이표 같고, 철학적인 수사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독자의 생각을 잠시 멈추게 하고 그 틈으로 진짜 나에 대한 직관을 흘려 넣으려는 시도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책을 읽다가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려고 해도 됩니다. 산책하듯이 읽는 거죠. 잠시 멈춰서서 문장 사이의 공백을 한번 느껴보세요. 때론 그 모호함 속에서 오히려 아주 깊고 조용한 어떤 깨달음이 문득 떠오를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저도 이번 책은 딱 한 챕터만 짧게 낭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식과 존재는 하나다> 226쪽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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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삼신三神사상, 삼재三才문화

카슈미르 샤이비즘에 대한 개념을 조금 이해한다면 우리의 전통적인 삼재三才문화, 삼신三神사상도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아요. 이 우주의 근원, 일자, 일신이 현상 속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는 하늘과 땅, 인간으로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래 한국의 전통적인 사상을 이해할 때 "신을 믿습니까?" 라는 말은 사실은 잘못된 질문인 거죠. 하늘도 신이고 땅도 신이고 인간 자신도 신神입니다. 우리는 상대를 볼 때 신을 보는 것이죠. 현상세계가 펼쳐 나갈 때 순서가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이 우주가 현상세계로 드러날 때는 시간의 순서가 있습니다. 하늘이 먼저, 그 다음 땅, 그 다음 인간과 만물이 태어나죠. 그래서 인간은 '관계'로 볼 때는 하늘과 땅의 자녀인데 그 '본성'으로 볼 때는 하늘도 같고(天一), 땅도 같고(地一), 인간도 같다(人一)는 겁니다. 오히려 인간은 하늘과 땅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보다 땅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태일太一'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태일이라는 말은 굉장히 어려운 철학적인 용어이지만 이걸 조금 더 우리가 익숙한 언어로 바꾸면 이것이 바로 '대한大韓'입니다. 우리나라의 국호 대한민국에는 하늘과 땅, 이 우주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존재 '홍익인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뜻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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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트 스파이라, 힌두교, 불교, 여러 서양 철학도 있지만 저는 이런 책들을 통해서 가급적 여러분들께서 우리 한국의 전통 사상과 철학 영성문화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명상을 하시거나 영성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이런 불교, 힌두교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여러분께서 한 가지 의문을 좀 가져보셨으면 좋겠어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 한국에는 아무런 사상과 철학, 우주관과 세계관이 없었을까? 신관이 없었을까? 한번 질문을 해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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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대로 갈수록 정치, 문화, 생활양식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신문화입니다. 한국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있고 참성단(제천단)이 있고 여러 문화, 예술, 고고학 유물들이 발굴이 된다면, 그것을 문화로 만들어낸 정신문화가 분명히 있었을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또 한 발 더 나아가 우리의 고유한 사상과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나를 깨우는 시간 <오후의책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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