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의 음악을 책임지는 디제이들
#퇴근후디제잉 은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 직장인 디제이들을 응원하는 단체입니다. 2018년 다시 인터뷰 시리즈를 포스팅하며, 2018년 평창 올림픽에 숨은 일등 공신, 평창 음악 감독이자 한국 대표 디제이 분들의 인터뷰를 전할 예정입니다. 디제이들의 인터뷰와 함께 평창 올림픽의 감동을 느껴보시죠.
안녕하세요. 퇴근 후 디제잉과는 많은 인연을 맺고 있는 디제이 바가지 바이펙스써틴 (Bagagee Viphex13) 입니다. 다보탑이라는 레이블을 운영하며 주로 테크노 음악을 플레이하고 만들면서 활동을 해왔고, 이번에 우연한 기회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SPP (Sport Presentation) Chief Music Director 가 되어서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음악을 담당하고 있네요. 현장에서는 아무래도 직함으로 불리다 보니 음악감독님~ 하고 저를 부르고 있지만 단순히 디제이 바가지하고 불러주는 게 더 좋고 익숙한 디제이이지요.
저는 빙상 경기 3 종목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올림픽에서는 피겨스케이팅 그리고 쇼트트랙을 맡아 강릉 아이스 아레나 (GIA)에 있고 패럴림픽 때는 슬래지 하키 종목을 맡아 강릉 하키센터에 머무르게 됩니다. 2곳 모두 실내이며,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종목들이기에 엄청 빵빵한 스피커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점이 강점인 장소들입니다.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전혀 다른 종목이 한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희한한 곳이기도 하죠. 아침에 피겨 경기가 있고, 저녁에 쇼트트랙 경기가 잡히면, 빙판은 같을지라도 사용하는 범위도 다르고, 트랙 밖에 있는 팬스의 두께도 달라지는 등 빙상장 모습이 변하는 곳이죠. 종목의 성향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나오는 음악, 참관하는 관중 분들의 성향, 선수와 감독들의 성향 등이 각기 다른 흥미로운 곳이에요.
쇼트트랙은 제가 경기장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음악에 대한 부분들 담당하고 있어요. 관객들의 등장부터 퇴장까지 전체 분위기를 주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기장에 입장한 후 호기심과 관심을 천천히 유지하며, 달궈 줄 수 있는 하우스 계열이나 편안한 팝을 틀다가, 선수의 웜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굉장히 락킹 한 음악들을 선곡한답니다. 경기장에서 음악이 필요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상황의 변화를 알리는 것이죠. 발라드가 나오다가 갑자기 엄청 강한 스피드 메탈 음악이 나온다면 어떨까요? 다른 행동을 하던 사람이라도 단번에 ‘아! 뭔가 시작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아나운서의 맨트가 나오는 타이밍, 선수가 등장하는 타이밍, 경기가 거의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 그리고 경기, 누가 반칙을 했거나 혹은 누군가가 승리 상황 등을 큰 스피커를 통한 음악으로 알리게 됩니다. 역시 그에 따라 관중도 반응을 하게 되고요.
반면에 피겨는 좀 달라요. 피겨는 선수의 경기 음악이 중심이 되어 분위기를 만들고, 나머지 음악들은 이를 받쳐주는 역할을 해요. 클럽 메인 타임 전후에 분위기를 조금씩 잡아주는 웜업 디제이 같은 느낌이랄까요? 2017년도에 같은 강릉 하키 센터에서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참여했었는데요. 하키 역시 쇼트트랙이랑 매우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이 되는데, 다른 점은 하키는 경기 중에는 음악이 전혀 없습니다. 하키는 경기가 중단될 때 음악을 바로 플레이하기 때문에 지금 반칙을 하였는지, 경기가 시작이 되었는지를 음악으로 알리는 역할을 해요. 예를 들어서 미국이랑 캐나다 같은 경쟁국의 경기에서, 미국이 반칙을 해서 경기가 중단이 되었을 때 미국을 조롱하는 듯한 음악을 플레이하면 캐나다 관객이 더욱 몰입해서 응원을 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디제잉을 하게 됩니다.
앞서서 인터뷰를 이미 진행하신 DJ Noke 님이 2017년 초에 연락이 왔었어요. 당시에 평창 동계올림픽 전에 실제와 같이 운영을 해보고 문제점이 있다면 고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하는 테스트 이벤트라는 것을 했어요. 그 테스트 이벤트에서 음악감독을 수행할 사람으로 감사하게도 저를 추천해 주셔서 스포츠 경기에 처음으로 음악 감독이란 직함을 달고 참여하게 되었죠.
그런데 당시 하키 경기 디제잉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고, 경기 룰도 유튜브에서 하키 동영상 몇 편, 플레이스테이션으로 NHL 하키 게임 몇 번 한 게 전부였어요. 준비가 소홀하다 보니 매일매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테스트 이벤트다 보니 관객이 하루에 30명도 없었고, 반응도 적어 ‘디제이가 여기에 필요한가?’라는 생각도 들고, 말 그대로 멘붕 그 자체였죠. 하지만 테스트 이벤트라는 것이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완벽해 지기 위해 준비하고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매일 밤에 숙소에 들어가서 하키 공부, 음악 준비에 매진하며 SPP(Sport Presentation)라는 분야를 더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총 25경기를 소화했는데, 24경기째까지 실수 투성이 었다가 마지막 25경기째에 비로소 실수 없이 디제잉을 끝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좋게 봐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하키 센터의 베뉴 프로듀서(Venue Producer) 로부터 평창 올림픽 때도 함께 하는 걸 이야기했었고 현재 이렇게 경기장에 있네요.
저는 패럴림픽까지 있기 때문에 3월 19일까지 강릉에만 있게 됩니다. 1월 25일에 이곳에 왔으니 거의 2달을 강릉에서 지내고 있는 셈이지요. 안타깝게도, 경기일정이 매우 빠듯합니다. 경기가 중계로 2시간짜리라면, 관객 입장부터 나갈 때까지 다 포함하면 제가 디제잉하는 시간은 5시간 정도인 거 같아요. 보통 피겨는 7시간, 쇼트트랙은 5시간 정도 진행하는데, 하루에 둘 다 진행하는 날이면 밥 먹는 시간 포함해서 14시간 이상을 경기장 안에만 있는 거 같네요. 그래서 아직 올림픽 파크 구경이나 강릉 구경도 제대로 못했고, 당연히 평창은 넘어갈 엄두도 못 내고 있네요. 개막식 때 저는 피겨 리허설 하느라 중간부터 텔레비전으로 살짝 봤는데 폐막식은 부디 보고 싶습니다...... (티켓은 없지만요;)
지금도 매일 같이 감동과 역사를 쓰고 있는 올림픽의 현장입니다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테스트 이벤트에서 있었던 슬레지하키 결승전이었던 것 같아요. 야구나 축구 보면 우승이 결정되면 선수들이 모두 나와서 환호하잖아요? 슬래지 하키 때도 ‘부아아 앙~~’ 하는 소리와 함께 경기가 종료되자, 경기를 하던 선수, 대기석에 앉아있던 선수, 코치 감독 다 나오는데, 이 분들은 하반신이 불편한 사람이잖아요? 다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목발을 짚고 있는 분들인데, 아이스 링크를 바로 나올 수가 없으니까 다 기어서 나오는 거예요. 본인이 몸이 불편하면 앉아서 승리를 축하할 수 도 있을 텐데, 너무 좋으니까 그렇게 라도 가서 서로 얼싸안고 부둥켜 울며 기뻐하더라고요. 지켜보던 저도 순간 눈물이 터져서, 디제잉할 준비를 하는데 엄청 애를 먹었어요. 승리 한 나라의 국가를 틀었어야 했는데, 눈물 때문에 곡을 찾으라 애 먹었어요. 그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저는 패럴림픽이 갖는 의미와 스포츠맨 쉽, 그리고 스포츠가 갖는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평창 패럴림픽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답니다.
당시 제가 잡은 컨셉은 슈퍼 히어로였어요. ‘비록 거동은 불편하지만, 당신들은 누구보다 강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등장부터 슈퍼맨 등장 음악으로 시작해서, 각종 마블 영화 OST를 플레이하고, 강인한 의미가 담긴 락, 팝송을 플레이를 했어요. 그리고 결승전의 엔딩곡으로는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를 틀었어요. 저는 음악을 통해서 경기장을 나서는 당신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어떤 차이라는 것 보다, 아예 다른 분야의 일이라고 생각돼요. 라디오 디제이도 같은 디제이지만, 클럽 디제이와 하는 일이 다른 것처럼요. 이 분야를 스포츠 디제이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경기장의 흥을 돋우는 일은 보통,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맡아서 했고, 경기장에서 나오는 음악을 오디오 오퍼레이터 분들이 플레이백으로 담당했다면 그 둘이 서로 합쳐진 일을 디제이가 하는 것 같아요. 관객들의 성향을 빠르게 캐치하여 더 경기를 집중할 수 있게 음악 선곡을 즉석에서 해내야 하고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돌발상황에 즉시 대처를 할 수 있어야 하죠. 불의의 사고로 선수가 다쳤는데, 거기에 ‘파티 투나잇, 점프점프!!’ 하는 음악을 틀 수는 없잖아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큐시트에는 항상 인터벌 타임을 넣고 있어요. 가령 아나운서가 말을 너무 빨리 해서 30초에 끝내야 할 걸 15초에 마무리했다면, 어떨까요? 3분짜리 광고를 틀어야 하는데, 광고를 트는 컴퓨터가 순간적으로 뻗으면 또 어떻게 될까요? 그 비는 순간순간마다 상시 대기 중인 디제이가 메우면서 전체 흐름이 깨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유도합니다.
여기서 진짜 디제이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예를 들어 순간적으로 2분 38초가 남는 상황이 생겼다고 가정을 해봐요. 그 순간 아무 음악이나 트는 게 아니라, 경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계산하고, 순간적으로 노래를 앞으로 감든, 특정 부분을 반복하도록 루프를 돌리든, 비트 점프를 해서 넘기던 디제이 본인이 가진 모든 스킬을 동원해서, 지금 나오는 음악의 특정 부분을 조율해서 정확이 2분 38초 동안 나오게 만들어야 되거든요.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심판의 경기 시작 호루라기가 ‘삑!’하고 울리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경기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아무 노래나 틀었다가 끝나는 거 보고, 다음 노래 하나 대충 더 틀다가 도중에 음악을 끄는 건 너무 생뚱맞을 거 같잖아요.
지금은 올림픽 기간이라 매일매일 전날 하이라이트 영상이 도착을 하는데, 그 영상에도 소리가 들어있어요. 그런데 비디오 오퍼레이터가 미리 듣고 배경 음악이 별로면 디제이 음악으로 대체하자고 이야기할 경우가 많아요. 그때마다 저는 인터컴으로 신호를 듣고, 어떤 스타일의 영상인지를 물어보죠. 박진감이 넘치는지, 혹은 슬로 모션의 감동 영상인지 등을 확인하고, 영상의 시간을 본 뒤에 선곡을 해서, 영상의 시간과 동일하게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게 미리미리 짜인 게 아니라, 현장에서 즉석으로 일어나요. 그런 상황을 겪을 때면, ‘와! 이런 건 정말 디제이 밖에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그리고 쇼트트랙 경기를 참여하고 나서 경험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일까 해요. 아무래도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종목이잖아요. 한국이 세계 최강국 중 하나이기도 해서 매일같이 1만 2천 객석이 가득하고, 또 우리나라의 메달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어요. 경기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쇼트트랙은 장거리 경기 경우 초반에 빠르게 스타트를 하지 않아요. 한 8바퀴쯤 남았을 때부터 선수들은 속도를 높이고, 2바퀴 남으면 거의 전력질주를 하죠.
저도 처음에는 일부터 템포를 낮추어서 선수 움직임과 비슷한 BPM으로 플레이를 하다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보면서 템포를 올려서 플레이를 하고 있어요. 제 눈앞에 CDJ와 같은 디제잉 기기가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진짜 승리를 응원하는 함성소리는 그 어떤 곳 보다 거대한 것 같아요. 실내라서 그런지, 소리가 한 곳으로 모이고, 함성소리가 대단한 만큼 저도 클럽처럼 음악을 크고 신나게 트는데, 2바퀴 , 1바퀴 남기고 사람들이 점점 더 소리 지르고, 골인해서 한국이 금메달까지 확정되면 그 순간은 진짜 모두가 미치는 것 같아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거대한 여운이 남았어요.
싸뢍훼요~ 요놔 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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