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일의 B컷 #010
그럼에도 '천천히, 깊게' 읽기를 고수하는 비법이 있다면? 천천히 읽다 보면 조바심도 생기고, 욕심도 생기지 않나?
비법은 없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주마간산 수박 겉핥기 식 독서법이 현재 지배적인 것 같은데 나도 그 경험을 했다. 지금도 가끔 한다. 그런데 주마간산으로 열심히 달려서 첫 페이지에서 540페이지까지 왔는데 ‘뭘 봤지?’란 느낌이 들면 뛰어온 의미가 없지 않나. 그 욕심을 버리는 게 핵심이다. 어떻게 하면 천천히 볼 수 있을까? 왕도는 없다. 욕심을 버리려 노력하고, 많이 봐야겠단 생각을 덜 해야 한다. 천천히 보기, 세밀히 보기, 그 노력을 책에도 해주면 좋겠다.
- '프로 책 읽러'가 말하는 천천히 깊게 읽는 방법 중에서 -
‘열심히 책을 읽자, 일 년에 100권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지난 몇 년간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앞만 보고 읽어대곤 했다. 연말에 내가 읽은 책들을 보며 흐뭇해하고, 올해는 또 어떤 책들을 많이 읽을 수 있을까 하는 헛된 생각만 가득했었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에선 아마도 조금씩 조금씩 ‘나는 과연 제대로 읽고 있나?' 하는 물음이 점점 더 커져갈 무렵, '깊게 읽기'를 한 번 시작해보기로 했다.
글을 쓰는 능력이 읽는 능력에 비해 부족한 탓에 우선 읽은 책들 중, 유독 밑줄이 많거나 가슴에 남는 책을 세세하게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목차를 보고 책의 프롤로그부터 맺음말까지 한 문장 한 문장 다시 넘기면서 책의 순서를 세기고 의미 있는 문장은 최대한 원문 그대로 받아 적었다.
급하게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가던 부분에 앞 뒤로 맥락이 파악되면서 좀 더 내용이 이해되기도 했고, 이렇게 많고 중요한 내용이 많은 책을 한 번만 읽고 넘기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했던 그 책을 깊게 읽은 결과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직접 옮겨 적은 노트를 다시 넘기며, 아마 그 위로 다시 밑줄을 그을 거 같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이제야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장규일의B컷 #깊게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