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맥락에서 저맥락으로

장규일의 B컷 #017

by 회사원 장규일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의사소통과 관련하여 ‘고맥락(high context)/저맥락(Low context)’이란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저맥락 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이 주로 표현된 내용(대화, 글)에 의해 이뤄지고 표현은 직설적인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 의사소통은 표현된 내용이 아닌 그 내용으로부터 상대의 진의를 유추함으로 이뤄지는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나 또한 지금껏 '고맥락 문화'가 주를 이루는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었다.


‘눈치껏 일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수적이었고, 부하 직원은 ‘김 부장님이 원하시는 게 이런 거겠지..?’라고 지레짐작하고 묻지 않아야 하며, 상대방(대부분 상사) 역시 ‘이 정도 시그널을 줬으면 척하고 알아서 해야지.’라고 당연시하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일하는 것이 미덕'인 그런 곳 말이다.


그런 환경에서 십 수년을 생활하다 보니 늘 고맥락적인 사고방식이 기본값이었고, 특히 타인과의 소통(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심지어 내가 소통을 정말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왠 걸.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각기 다른 환경과 배경을 가진 이들과 꽤 오랜 시간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지금껏 철통같이 믿고 있던 고맥락적 능력에 대한 환상이 여지없이 깨졌다. 저맥락 환경 속에서는 보다 더 디테일하고 명확하게 사안을 정리하고 정확하게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를 잘 이뤄내기 위해선 핵심 사안에 대해 글이나 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전달할 줄 알아야 하며, 전달받은 상대방 역시 제대로 된 피드백을 줄 수 있어야만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수 있다. (고맥락적인 문화에 오래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굉장히 피로감이 높아지고 짜증이 날 가능성이 크ㄷ...)


1*5UaGitEFztMvT0e1_Q70EA.jpeg 장님에게 코끼리 설명하기. 고맥락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끼리 정말 만만찮다.


저맥락 문화가 잘 상상되지 않는다면,


'본인을 포함해 다들 영어를 기본 언어로 사용한다는 가정하에, 당신이 옆 자리엔 중동에서 온 압둘라가 앉아있고, 맞은편에는 프랑스인 미셀이 그리고 본인의 팀장은 남미인 산체스 씨라 가정'해보면 어떨까? 각기 다른 문화권에 온 사람들이 한 팀으로 각자 맡은 업무를 잘 수행해나가기 위해선 마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주제는 무엇이며,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당신이 그걸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걸 통해 우리가 달성할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의사소통에 있어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선 안 된다.


“야, 지금 상황에선 당연히 이렇게 했었어야지. 일 한 두 번 해봐? 내가 어디까지 설명을 해줘야 돼?”

“제대로 설명을 안 해주셨는 데 제가 어찌 그렇게 하겠어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우리가 남이가’가 아닌 ‘우린 서로 다른 남’이기 때문에 제대로 소통해야 하는 것이다.


P.S - 결론: 나부터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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