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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Jul 05. 2020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사수를 만나다.

장규일의 B컷 #041

요린이(요리+어린이,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요리 왕초보를 일컫는 말)들과 함께 생방송으로 요리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인 백 파더. 천하의 백종원도 두부를 태우게 하고, 잔망스러운 개그천재 양세형도 머릿속이 하얘지는 상황이 속출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배우고, 식재료 저변 확대되면 요식업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큰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사회 초년생들이 꼭 한 번 만나길 꿈꾸는 '전설 속 사수'를 만나 일을 배우면 이런 느낌이 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라면 끓이기를 위해 라면을 준비하라고 했더니 컵라면을 준비할 정도로, 기본적인 소통조차 쉽지 않은 요리 초보자들에게 그는 어떻게 요리를 알려줄 수 있을까? 


1) 설명은 자세하고 정확히.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라는 생각으로 '일 알못' 에게 설명을 시작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당연히 1~2번 만에 될 리가 없고, 이해를 할 때까지 자세하고 정확히, 그리고 반복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책임자인 내가 부재중일 때도 일을 시도하고 점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까지 알려줄 수 있다면 최고일 거다.


백 파더는 라면 조리에 핵심 중에 하나인 물 양을 조절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라면 1개를 끓이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을 보여주기 위해 생수 1통(500ml)을 준비하고, 이를 다시 3잔의 컵에 나눠서 담고 이걸 다 투명한 볼에 모아서 보여준다. 그리고 빈 라면 봉지를 가로로 3등분으로 접은 후 1/3 지점을 자른 후 이 봉지로 물을 담으면 컵이나 생수통이 없어도 쉽게 물의 양을 맞출 수 있도록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가 있긴 했다. ㅎㅎ) 


2) 충분한 시간 주기. 


일에 서투른 이들은 일의 처음과 끝을 제대로 진행해 본 적 경험이 적다. 과제를 이해하고 수행하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일종의 요령을 익히지 못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주변에서 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도중에 일을 가져가서 진행해 버리거나, 계속 이를 다그치기만 하다 보니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건지, 이 일이 마무리되면 어떤 모습인지 등을 느낄 세가 없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각 어린이들의 기본기를 확인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라면을 끓여 보라고 하는데, 구미의 어느 한 할아버님은 물의 양도 맞지 않고 제대로 익히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라면을 내놓고 본인 스타일 이라며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에겐 우스꽝스럽고 비아냥거리기 좋은 소재겠지만, 백 파더는 그분에게 혹시 밖에서 돈 주고 끓인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묻고, 그분은 잘 안 먹는다고 한다. 이를 통해 백종원은 이 분은 아마 제대로 된 끓인 라면이 어떤 건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며 정의 내리고,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충분한 설명과 실행할 시간을 주고 손수 라면을 끓이게 한다. 


3) 일에 대한 부담감 지우기. 


백종원의 명성은 몇 년 전 마리텔(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어렵고 화려하게만 보이던 요리들의 있어빌리티를 해체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콩잼과 두부를 함께 갈아 만든 '그럴싸한' 콩국수나 이젠 누구나 다 알만한 깻잎 모히토, 파 기름으로 만든 만능 양념장까지 뭔가 있어 보이고 맛도 좋은 요리를 만드는 데 정작 큰 비용이나 수고가 필요 없고 본인의 노하우를 이용하면 누구나 쉽고 빠르게 요리를 할 수 있음을 알려줬다. 마치 어느 직장 선배의 탈인간급 PPT 만들기 스킬이 알고 보니 슬라이드 마스터 활용법에서 나온 '별 거 아님'을 알고 난 기분이랄까.


백 파더 이번 회차(7/4일 생방분)에서도 그는 '1분 라볶이'라는 기상천외한 레시피(레시피라고 할 게 없을 정도로 간단한 방법)를 알려 주는데, 요리를 좀 한다고 하던 공동 MC 양세형 씨마저 놀랄만한 간편함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라면 하나 끓이기도 힘들던 요린이들 역시 직접 본인의 손으로 라면을 넘어 라볶이까지 만들고 먹어보면서 요리라는 행위가 실제 그렇게 어렵고 무서운 게 아니며, 나 역시 관심을 가지고 방법을 배우고 노력하면 남들만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 그리고 이번 백 파더에 이르기까지 백종원 씨도 물론 요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이런 방법과 티칭 능력을 가지진 못했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 식당을 경영하면서 고민하고 고생하며 노하우를 쌓고, 이를 누군가에게 알려주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다 보니 지금의 백종원이 된 것이리라. 


"면발을 얼마나 익혀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끓는 물에 스프랑 면을 넣고 4분 정도 적당히 익히면 됩니다."라는 설명 대신 "수프를 넣고 끓인 물에, 면을 넣고 면발이 결대로 각자 풀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풀어지기 시작한 그때부터 1분에서 1분 30초 정도 더 익혀서 꺼내시면 됩니다. 그렇게 몇 번 해보시면 본인만의 스타일을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것이 정말 짬에 오는 바이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런 사수 밑에서 일을 배웠더라면.


#장규일의B컷 #전설속에만존재하는사수를만나다 #백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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