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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Jun 03. 2021

권한 이양의 추억

장규일의 B컷 #046

방목이냐, 마이크로냐. 


 팀원의 레벨에선 본인의 속도와 상사의 성향을 잘 파악해 적절하게 달리면 충분했다. 여러 프로젝트가 섞이고 업무가 늘어나도 나의 중심만 잘 잡을 수 있다면 평균 이상의 결과는 가져올 수 있었다. 팀을 이끌면서 조이고 푸는 방법이 늘 서툴렀었고, 때론 내 자리를 걸고 실험을 해야만 했다. 


 내 존재감이 흐려지는 게 싫었던 초보 시절, 내 아래 누군가가 왔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운 행동이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거 같았고, 요령도 없었다는 게 맞다. 일이 안 풀리면 더욱더 강하게 채근했고, 일이 잘 되면 되는 대로 더 잘해보려 풀 액셀을 밟았다. 결국 나와 함께 일했던 이들은 떠났고, 나는 홀로 그 일을 떠맡고 끙끙거려야 했다.


 시간이 흘러 중간 관리자가 되었을 무렵, 나는 예전을 떠올리며 팀원들에게 자유를 주고 각자의 흐름대로 일 하길 종용했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각자가 자신의 방법을 가지고 일한다면 내가 최소한으로 관여하는 대신에 더욱더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성원들에겐 팀장이 책임을 지지 않고 뒤에 뒷짐 지고 물러선 느낌을 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초반엔 예상대로 진행은 되는 듯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늘 흐지부지 되곤 했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약간씩은 핀트가 맞질 않는다던가, 각자가 생각하는 일의 기준과 완성도가 다르다 보니 결국 내가 뒤에서 한 번 더 정리하고 다듬어야 했고, 서로 간에 서운함과 짜증만 늘더라.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이냐? 방목과 마이크로 그 경계선을 지혜롭게 탈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팀장 본인에게 주어진 주 업무를 파악하고, 각 업무별 목표와 일정을 먼저 가늠해보자. 그리고 각 업무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세우고 이에 맞는 인력을 배분해보자. 물론 팀장이 모든 걸 챙길 수 없지만 앞 선에서 일종의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고 '누가 알아서 잘해주겠지?' 또는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내가 일일이 다 간섭해야만 일이 돌아가.'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설정한 업무 프로세스 중 특정 지점에서는 본인이 가진 권한을 이양하고 이를 받은 상대가 그걸 잘 이용해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채근하라는 말이 아니라, 설명하고 기다려주고 격려하라는 말이다.) 팀원들도 '팀장이 이 일을 하기 싫어서 본인에게 넘기는 건지, 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한 결정의 일환'인지 귀신같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권한에 대한 정확한 범위와 회사에서 생각하는 기대치 등도 종종 언급해주는 게 좋다. 


믿어라. 그리고 책임져라.

 

 내가 줄곧 처리하던 일과 권한을 넘기고 나면, 메일함에 CC 달린 메일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이 순간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불안함과 어색함에 먼저 참견하게 되면 상대 역시 적잖은 피곤함과 실망감을 느끼게 됨을 생각하자. 일 처리 속도가 느릴 수도 있고, 내가 직접 했을 때보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팀장은 본인의 시간을 확보하고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이를 참고 견뎌야 한다. 그리고 혹 잘못되더라도 팀장 본인이 책임지고 팀원에겐 다음 기회를 줄 수 있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일 자체를 망치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란 말은 아니다.)


#장규일의B컷

#권한이양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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