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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Oct 04. 2021

머리를 기르다

장규일의 B컷 #047

투 블럭에 다운펌. 


곱슬거리는 머리와 숱이 부족한 옆머리가 싫어 몇 년간 참 많은 머리 스타일을 시도하다 자리 잡은 방법이다. 부하게 뜨던 머리가 차롬 하게 내려왔고, 짧게 친(나는 6~9mm 정도로 유지한다.) 옆머리에 살짝살짝 닿으면서 지저분함이 다소 해소되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면 다시 곱슬의 뿌리는 자라나고 숱이 없는 옆머리도 슬금슬금 지저분을 뽐낸다. 


관리의 편의성(+약간의 까리함)으로 시작된 이 헤어스타일은 1달 정도가 지나면 다시금 현질을 요구하는데, 앞 머리가 눈을 찌르기 시작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왁스나 포마드로 반듯하게 넘기면 이상하게 튀어나오는 옆머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귀가 후 철저한 샴푸도 필수...)


최근 회사와 육아로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간 미용실을 가지 못했는데, 그 기간 동안 식사할 때나 운동할 때 춤추기 시작하는 내 머리를 고무줄로 묶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참에 머리를 한 번 길러 보면 어떨까 하는 싶더라. 그때부터 내 유튜브 검색어의 최상단은 남자 장발이 되었고, 인스타그램에 장발 관련 해쉬태그를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몇 년간 머리를 길러온 미소년(?)부터 이제 막 거지 존에 돌입한 누군가까지 장발을 향한 적잖은 고군분투가 영상을 통해 오롯이 전해졌다. 나의 모발과 현재 상태를 분석(?)했을 때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가장 빠르고 깔끔하게 장발(머리를 뒤로 묶고 다닐 수 있을 정도) 스타일링을 할 수 있는 법을 찾고 찾은 끝에 '투 블럭'에 위와 중간 머리를 길러 묶는 형태로 결정하고 미용실을 찾아 스타일링을 마무리지었다.  


올해 여름이 끝나갈 즈음부터 내 오른손엔 언제든 머리를 묶을 수 있는 검은색 고무줄이 껴져 있고,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가며 머리를 말리고, 회사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힘껏 머리를 당겨 묶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중간중간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넣기 위해 한 두 차례 더 묶곤 한다.


이렇게나마 머리를 기르면서 '역시 모든 건 해봐야 느끼는 게 있구나' 싶었다. 


처음엔 '머리를 기르고 묶고 다닌다는 게 뭐가 큰 대수일까?' 싶었는데, 시작과 동시에 추석 명절이 시작되었고, 고향에 나를 알고 있는 적잖은 사람들에게 어설프게 묶은 내 스타일을 보여주고 한 바탕 웃음을 선사했는데, 다음으로 방문한 처가에서 마주한 일가친척들의 그 황망한 표정이란... 괜스레 딸아이를 핑계 삼아 계속 자리를 피하곤 했다.


예전보다 머리 감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또 머리는 어찌나 잘 빠지는지. 샤워실 수챗구멍을 막는 머리카락 중에 절반이 내 머리카락임을 부인할 수 없겠더라. 그리고 머리를 묶고 소파에 기대거나 자리에 누울 때 은근 머리 묶은 게 걸리적거리는데, 별거 아닌 거 같다가도 또 은근 신경 쓰인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아 모르겠는데, 아내에게 물어보니 여름에 더위가 몇 배 더 심하다고 하니 앞으로 겪을 역경이 한참이지 싶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이 스타일을 유지해볼 요량이다.


거의 30여 년 간을 짧고 단조로운 스타일을 유지했던 내가, 머리를 기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해지고, 한결같던 일상과 주변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게 흥미롭기만 하다. 내 머리카락은 지금 눈썹을 넘어 코끝을 향해 자라고 있다. 머리 길이의 종착지가 귀 끝일지 어깨 일지 아님 다시 예전으로 회귀할지 모르겠지만, 참음이 주는 일상의 변화와 이를 통해 겪는 이 하루하루의 반응이 소중하고 또 신기하다.


#장규일의B컷 #머리를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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