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사원 장규일 Apr 02. 2022

장발 남자로 살아가기(2)

장발 일기 #002

혹 곱슬머리 남자인데 머리를 한 번 길러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나처럼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 (장발일기 #001 편에 이어)


1. 정리


투블록으로 머리를 기른다는 건, 어쩌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고 고군분투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고 머릴 기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1~2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들러 잡초처럼 올라오는 옆과 뒷 머리 등을 정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작한 나의 생각은 '올백 꽁지머리'였기에 기른 머릴 한껏 모와 묶은 그 순간에도 나름 깔끔한 느낌이 나야'만' 했다. 

일본 사무라이 헤어 스타일(촌마게)을 찾다 발견한 짤. 그만 찾아보도록 하자....

그 순간에 옆과 뒷 머리가 일정 길이 이상 길어 부스스하게 떠 있으면 뭐랄까... 일본 사극에 나오는 사무라이들의 머리 스타일(촌마게)이라고나 할까. 더 이상 거울을 보지 말고 하루빨리 미용실에 가야만 했다.(돈이 아까워 본인이 장비를 사서 투블럭을 유지하시는 금손들도 계시긴 하던데, 나의 저주받은 손길로는 시작하자마자 '촌마게'로 갈 확률이 150% 이상이라..)



2. 미용실에서(1)


 고정적인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던 시기에는 정해진 미용실에 늘 커트를 요청드리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머리가 어느 정도 길고 난 다음부턴 옆과 뒷 머리만 정리를 하기에 미용실을 딱히 정해놓고 가진 않았다. (블*클럽만 아니면 된다.) 집 근처든 회사 근처든 적당한 곳에 가서, 내가 원하는 내용을 설명하면 늘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영혼까지 끌어 머릴 묶은 덕분에 머리끈을 풀게 되면 칼집 낸 소시지 튀김처럼 끝만 경쾌하게 튀어 오른 머리가 된다.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간신히 묶이는 게 감사했다. #두피야미안) 


제주도 놀러 가고 싶네...

(당연히) 머리를 감고 왔던 그렇지 않든 무조건 샴푸부터 해야 했다. 젖은 머리로 미용실 거울 앞에 앉으면, 큰 헤어 집게로 여기저기 머리 라인을 따기 위해 고정하게 되는데 안경을 벗고 흐릿한 시선으로 멍하니 보고 있자면 제주공항 입구에서 늘 조우하는 야자수가 떠오른다. 




3. 미용실에서 (2)


 커트는 금방 끝이 나고(이럴 때면 '나도 한 번 내가 이발기를 사서 혼자 시도해볼까?', '이렇게 금방 깎는 데 돈을 쓰는 게 너무 아깝다.'라는 생각이 아주 잠시 잠깐 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앞에 언급한 촌마게 이미지를 떠올리면 금방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을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괜히 전문가가 있는 게 아니다.) 

아.. 안.. 돼...

 다시 샴푸 한 후 드라이를 받으면, 젖은 머리에서 찰랑 거리는 머리로 점점 변하게 되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옆과 뒷 머리의 두피에 찰랑거리는 긴 머리의 감촉이 느껴진다. (ㅂㅌ 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 왜.. 지?;;;) 그리고 눈앞엔 무한도전 단발좌 정형돈 씨가 등장해 눈갱을 시전 한다.


 

 거울 속 나를 보며 내가 눈살을 찌푸리는 와중에, 커트를 도와주셨던 미용사 분이 호기심 가득한 말투로 나를 보며 질문을 하기 시작하시는데, 방문하는 미용실이 늘 다르다 보니, 열이면 열 모두 질문을 하셨고 희한하게도 대부분 비슷한 결의 질문이라 대답도 엇 비슷하게 이어진다.


"머리 평상시에 어떻게 하고 계세요?" 

"묶고 다녀요." 


"그게 편하시죠?" 

"네, 처음 길러봐서요. 묶고 다니다가 좀 더 길면 그때 다시 고민해보려고요." 


"주변에선 다들 뭐라고 안 하시나요?" 

"묶고 있기만 해서 별다른 말은 없네요."


"회사원이신 거 같은데, 되게 개방적인 곳인가 보네요?"

"다들 별 말 없던데, 아마 속으로 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더 기르시게 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계신 스타일이 있으세요?" 

"당장은 잘 모르겠네요. 딱히 목적을 가지고 기르는 건 아니라서."


예전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으며 미용사 분과 길게 대화를 주고받는 분들을 보면서, 저 손님은 참 대단한 붙임성(?)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보다 싶었는데 머리를 기르면서는 내가 그러고 있더라. 역시 세상은 내가 경험해본 만큼 보이고 느껴지는 법인가 보다.


#장발남자로살아가기 #남자머리 #장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