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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Apr 05. 2022

장발 남자로 살아가기(3)

장발 일기 #003

예전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으며 미용사 분과 길게 대화를 주고받는 분들을 보면서, 저 손님은 참 대단한 붙임성(?)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보다 싶었는데 머리를 기르면서는 내가 그러고 있더라. 역시 세상은 내가 경험해본 만큼 보이고 느껴지는 법인가 보다. (장발일기 #002 편에 이어)




 이제 머리를 길렀을 때 쓸만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적어보도록 하자. 머리 기른 지 이제 반년 정도 채 지나지 않은 쪼랩의 이야기이니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음을 미리 밝힌다.  


1. 좋은 점


머리 관리에 신경 쓸 시간이 줄어든다.


 머리가 길면 신경 쓸 게 많지 않냐라는 말을 듣는데, 정작 나는 머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계속 관리를 해야 했다. 투블록 스타일도 계속 옆과 뒤를 다듬어야 했고, 심지어 반 삭발을 했을 때도(다행히 학생 시절이었다...) 나름(?) 관리가 필요했다. 곱슬거리는 머리를 단정하게 하기 위해 드라이를 하든 왁스/포마드 뭐든 발라야 정리해야 했다. 누군간 그 정도도는 귀찮은 축에도 안 낀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무지하게 귀찮았다. 반면 지금은 머리 감고 수건으로 대충 말리고 헤어 에센스를 조금 바르면 끝이다. 펌을 한 이후로는 드라이도 잘 안 하고 자연 건조를 한다. 정말 머리 감기가 싫은 날엔 그냥 묶고 지낸다. (물론 주중에 출근을 해야 할 때는 감기 싫어도(?) 감는다.)


자존감이 오른다.


 '티핑 포인트', '아웃라이어'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저자, 말콤 글레드웰은 헤어 스타일의 변화를 통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전 그의 헤어 스타일은 일반 남성의 평범한 그것이었는데, 머리를 기르고 폭탄을 맞은 듯한 아프로 펌을 하고 난 이후 그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주변의 관심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신기한 현상에 착안한 그는 '블링크'라는 역작을 쓰게 되는데 그 책의 중간중간에 머리 스타일의 변화와 본인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머리 스타일 바뀌고 개고생을 하셨었다는 작가님...

배달의 민족의 김봉진 전 대표도 어느 한 방송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만의 헤어 스타일(이분은 민머리)을 유지하는 이유가, 디자이너로서 본인만의 브랜딩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는데 특히 경쟁 PT와 같이 본인의 전문가적 권위를 보여줘야 할 상황에서 본인만의 헤어스타일이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 역시 머리를 기르고 묶고 볶으면서, 남들과 다른 나만의 무언가를 확실히 느낀다. 지금은 거기서 끝(읭?!)이겠지만, 혹시 아나? 이 헤어 스타일 때문에 유명해질지, 아니면 장발 일기가 유명해질지. (적고 나니 뭔가 앞 뒤가 바뀐 느낌이 든다.)


 착하게 살게 된다.


남자가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고 기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람들에 눈에 띄기 쉬워진다. 예전엔 혹시나 무단 횡단을 해도 그게 그거지 싶었는데, 이젠 조금만 잘못해도 금방 수사망에 걸려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처럼 얼굴 크고 심지어 머리까지 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게 강제로 선한 삶을 살게 되는 것 또한 머리를 기름으로서 얻게 되는 좋은(?)점임을 밝힌다.


2. 안 좋은 점


머리를 잘 감아야 한다.


 활동을 할 때 100% 포니테일을 할 요량이 아니면 머리를 제대로 감아야 한다. 예전에 머리를 안 감았다는 말은 아닌데(... 뜨끔), 머리가 길수록 샴푸 + 트리트먼트까지 하면 보다 더 느낌이 좋기 때문에 시간을 들이게 된다. 짧은 머리의 스피디함에 출근 시간이 맞춰진 남자분들이 장발로 넘어갈 때, 시간 계산에 실패할 경우가 있는데, 특히 늦잠을 잤을 경우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지각 따윈 없다!!!


 내 경우에는 세 살 난 아이가 새벽에 여지없이 날 깨우기 때문에, 늦잠을 잘 가능성 따윈 1도 없다. (고맙다, 딸아....) 짧은 머리를 감고 말리고(수건+드라이) 스타일링을 했던 것과 비해선 적은 시간이고, 펌을 한 이후로는 샴푸 + 수건 말리기 + 에센스로 시간이 좀 더 줄긴 했다.


면도나 양치질, 밥을 먹을  신경이 쓰인다.


'지이이잉, 드드륵~ 헐! 면도기로 이발할 뻔...'          


머리를 묶지 않고 잠결에 면도(전기면도기)를 하다 머리를 수염과 함께 자를 뻔한 적이 (몇 번) 있다. 그 이후로는 면도를 할 때마다 머릴 좌우로 휙휙 돌려가며 수염을 정리하는데, 귀찮은 나머지 수염도 길러볼까 싶었지만 수염 숯이 없어 포기했다. (아내의 한숨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젓가락으로 휘휘휙~ 하고 머리 묶는 스킬은 정말 대단!

양치질을 할 때도 방심하면 머리카락도 하얗게 닦일 수 있으니 유의하자. 식사할 때, 특히 국물이 있어나 면류의 음식을 먹을 땐 꼭 머리 정리를 해서 나와 함께 음식을 먹는 이들의 위생과 비위를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전에 없이 머리를 신경 쓰다 보면 여자분들이 그간 얼마나 대단한(?) 세상에서 살아왔었는가를 여실히 느낀다.


머리가 많이 빠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빠지다 보면 민머리가 낫겠다' 싶을 정도로 샴푸를 할 때마다 빠진 머리카락이 손에 걸리는 게 심상찮다. 숯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탈모끼가 있진 않아서 안심은 되지만 머리를 기르면서 예전보다 많이 빠지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구글링을 해보니 두피에 걸리는 하중(?)이 짧은 머리일 때와는 다르다 보니 빠지는 데 있어서도 훨씬 유리(?)한 환경으로 보인다. 이제 화장실 배수구를 막는 머리카락 더미가 온전히 배우자의 책임이 아님을 느낀다. 거실과 방바닥에도 빠진 긴 머리카락이 자주 보인다.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청소기를 들고 예전보다 자주 치우고 또 치우는 편이 정신 건강에 낫다는 생각이다. 더 욕먹기 전에.


3. 기대감과 걱정


 막상 적고 보니 머리를 기르기 전에 수없이 검색해봤던 유튜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긴 하지만, 1년 정도 지나고 나서 다시 장단점을 생각할 때 참조해보면 좋겠다 싶다. 그리고 아직 장발의 여름을 겪어보지 못한 터라 당장 몇 달 후에 있을 여름에 분노에 찬 가위질과 함께 장발 일기를 마무리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긴 한다. 지난겨울 찬 바람을 막아주는 긴 머리털의 존재를 처음 느낀 것처럼, 여름의 폭염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줄 머릿결도 이번에 제대로 한 번 느껴볼 생각이다. (글을 적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덥다...)


#장발남자로살아가기 #남자머리 #장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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