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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Apr 19. 2020

비가 온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이제야 들린다. 비는 낮부터 내렸는데, 밤 9시가 되어서야 나는 빗소리를 듣는다. 코로나고, 비가 오고, 춥고, 우리는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있으면서 나는 아이 셋을 키우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고 생각했다. 한때는 아이 셋을 마음 편히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바뀌면, 내가 더 마음이 넓어지면, 내가 심적으로 안정을 찾으면.... 내가 아이들을 편하게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 7세, 5세, 3세 아이들을 바라보며...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이제야 받아들였다. 진심으로.


며칠 전 아이들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내 물건을 함부로 만지고 부셔서 화가 났다. 내 말을 도대체 듣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화가 났다. 계속 계속 싸우고 우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전방위적으로 집을 어지르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안방 문을 닫고 혼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서 미안했다. 그리고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했다.


오늘 아침, 날이 흐려서인지 심한 두통으로 일어나기 힘들었다. 아이 셋이 거실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훈육하는 남편의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그때 느꼈다. 2살 터울 아이 셋을 키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아파도 실컷 누워있을 수가 없다. 집안일은 끝도 없다. 아이 셋은 집안일을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밥 먹다가도 아이 셋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식탁 의자에서 몇 번이나 일어나야 한다. 치우고 나면 더러워져 있다. 아이들이 싸워서 엄마에게 혼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또 싸운다. 아이들 우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나보고 아이들을 왜 그리 어렵게 키우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려놓으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잘못을 찾아보고 내가 변화할 것들을 찾았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 때문에 내 육아가 더 힘들었다는 것.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며칠 전, 엄마와 인테리어 공사를 하시는 엄마 친구분이 우리 집에 오셨다. 내가 아이 셋 돌보느라 지친 표정이 역력하자, 두 분이 자신의 육아 경험을 이야기하며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키운다고 말하셨다. 나는 뭐, 반박할 힘도 없고 싸우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그냥 맥없이 말했다.

"두 분 다 아이 셋 키워보신 분 없잖아요. 저만 아이 셋 키우잖아요."

내 말에 잠깐의 정적. 그러다 웃으시며

"그래 그래 아이 셋 키우는 거 힘들지."


엄마와 엄마 친구분이 내 아이 셋 육아의 힘듦에 공감을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말하고 싶었다. 아이 셋은 내가 키우고 있다고. 내 힘듦의 주체도 나고 책임도 나라고.


빗소리를 들으며, 고요한 시간을 내게 선물해준다. 마음껏 힘들어해도 된다고. 힘들어할 자격이 있다고. 그리고 오늘 낮에 아이들이 노래 맞춰 막춤 추는 동영상을 자신도 모르게 보고, 자신도 모르게 흐뭇해하며 몇 번 더 보는 '세 아이의 엄마'의 자아를 바라본다. 삶의 고통과 기쁨은 그 삶의 당사자만이 경험할 수 있고 발견할 수 있구나... 삶의 외로움이 삶의 고요함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는 코로나 19의  비 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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