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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Apr 24. 2020

가만히 안아주었다.

코로나 19 덕분에(....라고 쓰고 '때문에'..라고 읽는다.) 아이 셋과 24시간을 함께하는 행운(이라고 쓰고 '환장'이라 읽는다.)을 얻었다. 7, 5, 3이라는 나이 가진 아이들과 24시간을 함께는다는 것은... 초능력을 가진 마블 히어로들이  육아를 한다 하더라도 십분에 한 번씩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공원에 갔다. 공원 갈 때에도 짐이 한가득이다. 마스크 네 개, 물병 두 개, 간식 충분히, 겉옷 3벌, 기저귀 두 개, 물티슈, 가제수건, 지갑, 아기띠. 결혼 전 터기 여행을 가기 위해 샀던 큰 백팩인데, 고작... 집 앞 공원을 가는 것뿐인데도 이 가방이 가득 찬다.


내 몸통보다 큰 빨간 백팩을 메고 선글라스를 끼고 아이 셋을 데리고 비장하게 공원으로 나선다.  걸어서 5분거리가 비장해진다. 이게 육아의 매직이랄까? 오호경(驚)재라. 오호애(哀)재라...


3세 막내는 계속 넘어진다. 작은 턱에도 넘어지고, 자잘한 돌멩이에도 넘어지고, 바람에도 넘어진다. 넘어지는 3세를 나는 계속 일으켜 세운다. 5세는 내 손을 잡고 있다. 엄마랑 산책을 가서 신이 났다. 그러나 3세가 넘어질 때마다 엄마는 5세의 손을 놓게 된다. 7세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다 아는 길, 저~~ 어기 가면 자기가 좋아하는 물레방아와 나무 놀이터가 있다. 엄마, 3세, 5세를 기다리는 것이 안달이 나서 먼저 저~~ 어기 멀리까지 뛰어간다. 7세가 물레방아 앞에서 잘 있을 것을 엄마는 알지만, 혹시나... 맛있는 거 준다는 사람을 따라가는 거 아냐?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뮤지컬 발성으로 "ㅇㅇ야~"라고 부른다. 공원 전체가 공명한다.



아이코 3세가 바람에 또 넘어졌네. 일으켜 세워야지. 5세는 엄마 손을 다시 놓게 되어 툴툴거리네. 엥, 7세 요것은 어디 갔지? 이상한 사람 따라가는 거 아냐? 흠흠... 배에 힘을 주고 "ㅇㅇ야~ ㅇㅇ야~ 어디있니이이이이~" 나의 성량이 이렇게 풍부한지, 아이 셋을 낳고 나서 알았다. 인간의 잠재력은 역시 어마어마한 것이다.



계속 넘어지는 3세를 일으켜 세우며 손잡고 싶어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5세를 챙겨가며 7세가 보일 때까지 "ㅇㅇ야 ㅇㅇ야~"를 외친다. 저어기 멀리 콩알만 한 7세가 보인다. 아이 셋쯤 낳으면 노안은 오지만 인파 속에서 콩알만 하게 보이는 자식은 단번해 찾아내는 초능력이 생긴다. 인간의 잠재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2년 터울로 아이를 셋 낳고 기르면 마블 히어로들과 어깨를 줄만해지는 것인가...



집에서 나온 지 십 분 정도 되었을까? 10시간 정도 밖에 있었던 것처럼 몸의 피로감이 강하게 밀려온다. 십여 분 만에 우리 넷은 한자리에 모였다. 한시름을 놓는다. 3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하고 계속 인사를 하고 다니고, 7세는 콩벌레를 찾는다고 땅을 판다. 5세는 7세를 따라 콩벌레를 찾다가 3세가 인사할 때마다 "안녕하세요"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나는 짐짓 저 생명체들의 엄마가 아니라며, 혼자 온 것처럼 생명체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바닥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아 물을 마시며 그들을 조망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저 땅굴꾼, 인사꾼, 땅인사꾼과 너무나도 흡사한 외모... 엄마가 아닐 수 없는 외모를 가진 터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이고 아이가 인사를 잘하네~". "아이고 땅을 잘파네~", "아이고 인사도 잘하고 땅도 잘파네~" 하며 말할때마다 꼭 나를 쳐다본다. 그래 그래 그렇구먼... 피할 수 없는 것이구먼... 삶에 대한 깊은 수용도 아이 셋을 낳고 배우게 되었다. 삶은 끝없는 배움과 자기 수용의 연속임을 엄마가 되니 절절하게 체험한다.



각자의 속도, 각자의 성향을 가진 3세, 5세, 7세와 함께 하는 일상은 롤러코스터와 회전목마를 왔다 갔다 하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신없는 시간이다. 까딱하다가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화, 분노, 억울, 피곤, 짜증...이라는 감정만이 차곡차곡 쌓이고 만다.


하루는 아이 셋이 놀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7세와 5세가 함께 놀고 있고 3세는 그 곁다리에서 5세, 7세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하나하나 만지고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7세와 5세가 싸운다. 역할놀이를 하다가 자기가 이거 할 거다 저거 할 거다... 하며 싸우기 시작하고, 갑자기 자기들 장난감을 만지고 있는 3세가 눈에 보여 그 장난감을 빼앗는다. 어느 순간 3세, 5세, 7세는 평소에는 그닥 좋아하지도 않던 장난감을 서로 뺏고 뺏기고 그러다 모진 말을 하고 또 그러다 밀치고 때리고 또또 그러다 대성통곡을 한다. 뭐 하루에도 수십 번 일어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루틴이다.


그런데 그날을 내가 개입하지 않고 그냥 바라봤다. 3세, 5세, 7세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나는 순수하게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봤다. 내가 지쳐서였을까? 그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였을까? 이유가 뭐가됐든, 나는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엄마가 이상한지 5세는 기겁하며 내 눈을 피하긴 했다.) 그냥 바라봤다.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 무언가를 강렬하게 요구하는 눈빛, 서러움이 폭발하는 눈빛을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 이해해달라는 눈빛이 내 가슴에 꾸욱 꽂혔다.


나는 자주 남편에게 투정을 부린다. 육아로 힘들고 지친 날에는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올 때 나는 우울한 티를 팍팍 낸다. 남편이 "무슨 일었나?"라고 물으면 나는 "다 오빠 때문이야!"하고 주먹으로 남편을 한 대 때린다. 종로에서 빰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가 아닌 주먹 날리는 격인데... 그럴 때마다 아무 이유도 모르는 남편은 "그래 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해준다. 다 포기했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며. 체념으로 인한 한숨과 나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한 말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럴 때 스트레스가 화악 사라진다. 오빠 때문이야!라는 말의 대답, 그래 내가 잘못했다... 에서 그냥 화가 풀린다. 억지임을 알아도 그냥 받아주는 존재가 있어서 그냥 편안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 것은 무엇일까? 명확한 논리? 공평한 중재? 적법적인 처벌? 내 눈을 헝겁으로 가리고 한손에는 육아서를, 다른 한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어야할까?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가려내는 것이 중요할까? 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처럼 아이들도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이해 받음... 이 아닐까?


아이들을 이해해주는 부모... 를 계속 되새기며 문득 드는 질문 하나.

너는 너를 온전히 이해해주니?

선희가 죽기 두시간 전에 했던 마지막 통화에서 투정만 부렸다고 나를 얼마나 미워했던가...

회사 다닐 때 기안문에 맞춤법이 틀렸다고 나를 얼마나 무능하게 여겼던가...

나보다 더 주목받는 사람이 있을 때 나의 존재를 얼마나 깎아내렸던가....

아이를 낳고 살찐 나의 몸을 보며 얼마나 욕을 해댔던가....

육아에 시달려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얼마나 업신여겼던가...

아이 셋을 잘 키우지 못한다고 나는 엄마될 자격이 없다고 얼마나 몰아붙였던가....



요즘 내가 매일 하는 일. 아무도 보지 않을 일기장에 매일 20분씩 내 마음대로 글을 쓴다. 아이들이 싸우고 울고불고 해도, 나는 투명인간이야... 를 되뇌며 그냥 쓴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 그분의 책 "시절일기"에서 매일 20분씩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투명하게 글을 쓰면, 글쓰기 실력이 는다는 그 문장만을 보고 매일 20분씩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내서 글을 쓰게 됐다. 그렇게 스스로를 욕하고 미워했지만 그럼에도 가고 싶은 길을, 매일 할 수 있는 만큼 걸어가고 있는 "나"가 있었다. 


또 내게는, 3세, 5세, 7세 키우는 것이 죽을 것 같이 힘들어 울고불고하고, 아이들 놔두고 그냥 도망치고 싶어해도...  아이들을 위해 큰 사랑을 배우고 싶어하는, 더 좋은 엄마이자 사람이고 싶어하는 "나" 있었다.



욕 먹어도 포기하지 않고, 잘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행동하는 "나"가 감사하다. 그리고 인생이 마음대로 안돼 스스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성과 논리로 기죽이기보다는 그저 가만히... 안아주고 싶어졌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너도... 너도 참 고생이 많다. 고생이 많아.   



"나"를 미워하는 "나"를, 거부하고 미워했던 "나".

이 셋의 거국적인 통합을 기원하며, 맥주 한 캔을 딴다. 너희들 모두 사..사..사....사이좋게 지내.

Cheers! 내일은 남편이 아이들을 보는 토요일이다! 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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