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셋째 딸의 억울하다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계속 계속 운다.
내 방문이 열리고
뒤뚱뒤뚱 걸으며 들어오는 세살 아기.
오빠의 내복 윗도리를
다리에 끼워놓고는 운다.
웃기다.
웃긴 그 모습이 불편해 보여, 옷을 벗기니
더 크게 운다.
이건 바지가 아니라, 위에 옷이야.
하며 나는 손으로 내 가슴을 톡톡 친다.
한참 울다가 아이는
바지 아니야?
응 바지 아니고 위에 옷이야.
위에 옷?
위에 옷입혀 줄까?
엉
90사이즈 잠옷 위에
120사이즈 잠옷을 덧입혔다.
울음은 멈추고
뒤돌아 방문을 닫으며 나간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릴때면
울음의 소용돌이에 끌려가
내 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젊었던 우리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고
눈물 자국 가득한 어린 내가 떠올랐다.
이제서야 조금 알게된 당연한 사실은
아이의 울음은
그저, 단순히 그들의 언어일 뿐.
울음 많은 내가, 울음 많은 아이 셋을 낳은 이유는
어린 시절 가득 있는 눈물자국을
그저 닦아달라는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