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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Jul 26. 2024

일이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이유-2

함께하는 것에 대하여

"로빈 씨 너무 잘하고 있어요. 사람은 다 실수하지, 10년 만에 일을 한다는 게 쉽나. 나는 로빈 씨 보면 드라마 여주인공 같아 보여요. 긴 휴직 후에 복직한 여주인공이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이 떠올라. 너무 잘하고 있어요. 진짜로."


너무 따뜻한 말씀이지만, 너무 감사했지만...

내 안에 있는 자기 비난과 자기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프로젝트 중간중간 너무 힘든 순간이 많았다. 내가 맡은 업무 특성상 외로운 업무도 많았고, 다들 후배들이었기에 업무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같은 부서의 부장님과 대리님이 나에게

"뭐 도와 줄 일 없어요? 나는 지금 바쁜 일 끝내서 시간 돼요."

라고 물어봐주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안에 감사함이 가득 올라왔다. 그분들이라고 왜 안 바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업무 특성과 나의 상황을 생각해서 배려있는 질문을 물어봐주셨다.


"로빈 씨. 뭐 도와줄 일 없어요?"


부서장님과 대리님은 내가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옆에 오셔서 함께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업무를 하나하나 해 나갈 때마다 격려를 해주셨다.


"로빈 씨, 진짜 일 잘하고 있어요. 다른 지점에서는 이거 실수해서 큰일이 생겼는데, 너무 잘했다.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챙겼지?"


"로빈 씨는 보고서를 본 사람은 승인을 안 해 줄 수가 없겠어. 잘한다 정말."

 

어느새 나도 조금씩 일을 배워나가고, 잠깐의 여유가 생기는 중간중간 부서장님과 대리님에게 어느새 나 또한

"뭐 도와줄 일 없어요?"

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뭐 도와줄 일 없어요?"라는 질문은 

"우리 함께 해요"라는 말과 같았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서로가 어떤 부분이 힘든지 계속 바라봐주고,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기꺼이 함께 했다. 서로의 힘듦 알고, 기꺼이 도와주고, 함께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를 처음 배웠다. 



함께 했기에

일이 많아도 힘들지가 않았다. 어느새 업무가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하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작업"으로 변화되었다.  



모든 프로젝트가 끝나고 부서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로빈 씨와 함께 일을 해서 너무 즐거웠어요. 로빈 씨가 하는 작은 실수들 그거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로빈 씨가 보는 시선이 넒어서 다른 사람들이 부족한 것도 기꺼이 도와주고, 자기 일도 열심히 하고.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잘 끝냈어요."


내 안에 있었던 자기부정, 자기 의심이 사르르 녹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0년간의 공백으로 내 안에 자격지심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10년의 시간으로 나는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열심히 해야 한다."

라는 신념 안에는 직장 내 최대 육아휴직기간을 가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 것 같아 겁먹고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오롯이 혼자서 해야 하고 감당해야 할 일이 많다. 나의 상황은 특히 더 그랬다. 양가부모님 들 모두 바쁘셨고, 남편 또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출장과 야근이 잦았다. 내가 아무리 아파도 아이를 돌 봐야 하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고 버텼다. 돌이 안된 둘째에게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중에 세 살 첫째가 배고프다고 울면 둘째에게 모유수유를 하면서 첫째 밥을 챙겼다. 만삭의 몸으로 2인용 유모차를 끌고 병원, 마트, 미용실 온갖 곳을 다녔다.


덕분에 나는 남편 없이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도 아이들과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제주도도, 필리핀도.  10년 동안 아이들을 돌본 경험 덕분에 나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저절로 몸이 나가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사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회사 생활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부서장님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육아로 인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계신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 시간이 나의 삶을 멈추거나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또 다른 장점을 수련하고 계발하고 있는 귀한 순간이라는 것을요.  엄마가 되었기에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임을요. 하지만, 너무너무너무 많이 힘들고 외롭다는 것 또한 압니다. 그 괴로운 순간에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고, 엄마도 잘 성장하고 있음을, 당신은 지금 너무나 잘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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