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큰 힘이 됩니다.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편이 되어주고 힘들 때 도와주고.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으면 정말로 큰 의지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과도 틀어질 때가 있습니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하거나,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을 가질 때면 꼭 실망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 사람은 나의 어려움을 다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며 마음속에 응어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바로 13년 전에요. 동기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요. 아직 어리기도 하고, 관계가 서툴기도 했습니다. 너무 친한 사이인데,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둘 사이에 삐걱거리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인간적으로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일을 하다 보니 부딪히는 일이 생기고, 차마 말은 못 하고, 그래서 마음속에 불편함을 쌓아두고, 그러다가 점점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복직을 하고, 저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 도요. 직원들 사이에 악명 높은 상사분과 일하게 되었을 때(물론 저는 알지 못했지만 동료들이 걱정의 문자를 보내서 알게 됐습니다) 걱정했습니다. 그 분과 1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그분에게 도움을 받는 부분도 많습니다.(어려운 부분도 물론 있기는 합니다.)
직장분들이 제게 그분과 함께 있는 거 힘들지 않냐고 물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이 셋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더 쉬워요."
제 대답에 다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아하~" 합니다.
엄마인 제게 내 뱃속에서 열 달을 품고 낳은 존재가 세 명이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사랑하고 아끼고, 제게 너무나 귀한 존재입니다. 우주만큼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밤에 잠을 잘 안 자고, 그 존재로 인해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가 없고, 같이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부분이 생길 때,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매우 아주 사랑하는 이에게 미움이 생길 때, 내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존재에게 화가 날 때, 격한 사랑과 격한 미움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정신이 혼미해지고, 나조차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나의 밑바닥이 드러납니다. 나의 바닥은 여기까지 인가... 했다가 더 아래의 밑바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게 엄마의 삶은 내 바닥 깊이의 기록을 계속 경신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밑바닥 기록 경신을 반복하다 보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받아들임"입니다.
받아들임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1. 내게(저 사람에게) 이렇게 상상도 못 할 최악의 모습이 있다니! : 자기&타인 비난 단계
2. 이 최악의 모습을 없애보자! : 의지의 단계 - 수많은 결심과 자기 계발로 불태움(다시 1단계로 회귀)
3. 나의 최악의 모습은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이런 사람인가 봐: 무기력 단계(틀의 확장 단계)
4. 내게는 최악의 모습도 최고의 모습도, 평범한 모습도 다 있구나. : 받아들임 초기 단계
5. 우리 아이에게도 좋은 모습, 나쁜 모습 다 있구나. : 받아들임 응용 단계
6. 인간 모두는 좋은 모습, 나쁜 모습이 모두 혼재하는구나. 그게 인간이구나. : 받아들임 일상화 단계
저는 1번 2번 사이를 수십 년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비난하며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밑바닥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데에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아이 셋 육아를 하며 1, 2번 이번을 더 가혹하게 경험하며 3번의 무기력 단계를 경험할 때, 너무나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부정하고 싶은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나비 축제에 가서 우연히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됐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 시기를 반드시 경험해야 하지요. 애벌레가 번데기 속에서 나비가 되기 어떤 준비를 할까요?
물이 됩니다.
무의 상태가 됩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는 자기의 모습을 다 내려놓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듣고 온몸의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무의 상태가 되는 것, 이게 바로 3단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내 위주로 생각했던 삶, 내가 제일 중요하고, 세상의 바라보는 기준에는 오직 나의 시선만 있고, 그렇기에 나의 흠결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나의 단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온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제야 있는 그대로의 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내 안의 분노, 미움, 기쁨, 슬픔, 행복, 장점, 단점 이 모든 것을 다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그제야 아이들도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게 또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엄마가 되기 전과 육아 11년 차 엄마가 된 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사람의 장점과 단점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랑 맞지 않습니다.
내가 나의 기준으로 누군가를 판단할 때는 말이지요.
하지만,
나의 기준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는 수많은 것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나의 기준을 내려놓으면,
모든 사람과 나는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