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을 낳고 기르면서 어느새 40대가 된 나를 바라봅니다. 꿈 많고 포부가 컸던 30대의 한 여성이 삶에 안주하고 있는 40대가 된 것 같아 허무함이 밀려오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그 허무함 속에 갇혀버린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결혼 전, 회사의 고위직에 갈 꿈을 꾸면서 멋진 작가가 될 꿈을 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30대. 내가 노력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를 뒤로하고 40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제약을 매일매일 느끼며 살아가게 되면서 이제는 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닐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내 가슴속에 날카롭게 박혀, 가슴이 너무 시려서 꼼짝할 수가 없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덧없고 이룬 것도 보잘것 없이 느껴지는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한 초라함이 견딜 수 없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술을 마셔도, 친구들과 통화를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도, 절대로 채워지지 않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내면으로는 시작과 끝을 모를, 그래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공허함에 잠 못 자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나는 너무 초라하고 부족한 것 같아...라고 말하며 나의 슬픔의 매우 작은 편린을 용기 내어 보여주었을 때 남편이
"네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냈는데, 아이 셋도 낳고, 얼마나 좋은 엄마인데"
라는 말을 해주어도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으며 내가 왜 이걸 참아내야 할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으면 아무것도 기억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데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무슨 소용일까?
삶에 대한 온갖 물음표가 떠다니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막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날이 좋았고, 매미 소리가 우렁찼고, 바람 한점 없었고, 햇볕은 말 그대로 쨍쨍 이었습니다. 내가 열 달을 품고, 내가 여태껏 키운 5살의 그 아이가 유치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옆모습을 보았을 때. 심장이 쿵 했습니다.
자기 눈앞에 펼쳐진 세상과 시간과 공간을 투명하고 꾸밈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 눈빛과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보드랍고 토실토실한 아이의 손결이 순식간에 내 안을 가득 매웠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내 삶의 의미를 왜 아이를 통해 느끼는지. 엄마여서 그런 건지, 아이와 내가 운명이어서 그런 건지, 우주의 섭리가 그런 건지. 그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엄마가 되기 전의 삶의 의미와 엄마가 되고 난 후의 삶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무모함과 패기와 결단과 용기는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그 자리에 자리 잡은 것은 삶에 대한 수용, 일상의 소중함,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힘,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사, 존재만으로의 충만함입니다.
저는 여전히 꿈을 꿉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좋아하며 작가를 동경했습니다. 박경리 작가님처럼 대작을 쓰고 국민 작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박경리 작가님처럼 되겠다는 꿈,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사라졌습니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저는 소설을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까요. 대신에 저는 제가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누구보다 평범한 삶이지만, 제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그 과정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용기를 주는 글로서 표현하고 싶습니다.
글이든 내 삶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넘쳐나는 SNS 속에서도 저마다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저마다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누구나 너무나 작은 존재이지만 누구나 우주처럼 광활한 존재임을 알아차리는 데에 작은 돌 하나 쌓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변화된 나의 삶 덕분인지, 새로운 꿈 덕분이지, 그 두 개가 합쳐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갈팡질팡하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고군분투하는 직장인으로서 10년의 경력단절을 가진 여성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내 안에는 물음표가 가득이고, 부지불식간에 밀려오는 허무함과 허망함에 허우적거리다가 어느 순간 아이 셋의 존재가 저를 구원하고 저를 일으켜주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제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나의 삶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삶입니다. 나만의 삶의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내 앞에 모든 것들을 그저 성실하게 마주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