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예상치도 못하게 아이들의 짜증 가득 담긴 울음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열이 머리끝으로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우는 것은 의사표현의 한 방식이고, 정신이 건강하다는 뜻 일거야....라고 평소에 가졌던 생각들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집니다. 지난밤에 잠 잘 자던 셋째가 무척 많이 깼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내 마음의 크기는 종지 그릇보다 더 작아져있었지요. 아이의 울음소리가 내 몸의 모든 세포를 콕콕 찌르는 것만 같고, 이 울음소리에서 제발, 당장 벗어나고 싶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무척 많이 우는 아이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공업지대 옆에서 슈퍼마켓을 하시며 공장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을 상대로 라면도 팔고 삶은 달걀도 팔았지요. 내가 다섯 살쯤 되었을까요? 가게에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바닥에 앉아 다리를 동동 구르며 울었습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엄마는 가게 의자에 앉아 나를 달래주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울음을 받아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해서 더 울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안아달라고, 나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의자처럼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속상해서 울다가 나중에는 서러워서 그 후에는 외로워서 더 크게 울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크게 울어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 외로웠습니다. 언제 울음을 그쳐야 할지 몰랐습니다. 울다가 갑자기 그치는 것도 이상하고 어색해서 마지막에는 더 크게 울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지쳐서 울음을 그쳤습니다. 하지만 온몸이 흔들리며 딸꾹질이 나왔습니다. 이젠 울고 싶지 않은데, 마음대로 새어 나오는 딸꾹질이 야속했습니다. 아무 말 없는 엄마를 지나 방으로 들어가 벽에 기대어 앉으면 내 옆에 있어주는 것은 그 야속한 딸꾹질뿐이었습니다.
엄마가 나의 울음에 반응하지 않을수록 나는 더 자주 울었습니다. 어리고 여린 다섯살의 나는 이 세상에 나의 슬픔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엄마조차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는 그 고통을 숨길 수 없어 자주 울음을 터트렸고 울 때마다 더 깊이 외로워졌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것 같았습니다.
임신 중에 나는 ‘아기가 울면 무조건 안아줘야지. 내 아이는 나와 똑같은 상처를 안 받게 해 줘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아이가 둘이 되고 셋이 되니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나, 엄마와 똑같이 행동하는 내가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도 나와 똑같은 상처를 받겠지요. 우리 아이도 지금 외로워서 더 크게 우는 거겠지요. 우리 아이가 바라는 오직 하나는 엄마의 따뜻한 품이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몸 마음이 지쳐 울고 있을 때는 그것을 알고도 아이를 한번 안아주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우는 아이에게 화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온 몸이 꽁꽁 얼어붙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숨도 쉴 수가 없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힘들어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의자처럼 앉아있던 엄마를 떠올립니다.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하루 종일 슈퍼마켓에서 손님들에게 시달리고 밤 12시가 되면 집안일을 하고 새벽 2~3시가 되어야 잠이 드는 생활을 몇 년이나 했던 20대의 엄마에게 우는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까... 어리고 여린 20대의 엄마를 이해해보려 합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서는 ‘그래도 그러지 말지. 한 번만 안아주지. 말이라도 걸어주지. 쳐다라도 봐주지. 나 너무 무섭고 외로웠는데.’
울고 있는 아이를 가만히 부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에게 폭 안깁니다. “많이 슬펐어?”라는 엄마의 말에 응어리졌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지 한번 크게 울다 이내 그칩니다. “그래 그래 많이 슬펐구나” 아이를 꼭 안아줍니다. 아이를 안아줄 수 없었던 20대의 우리 엄마도, 엄마에게 안기지 못했던 5살의 나도 꼭 안아줍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꼭 안아주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