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방학입니다. 매일 하나씩 글쓰기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글쓰기가 뭔가요? Brunch가 뭔가요? 코칭이 뭔가요?를 하고 있더군요.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 매일 밤 마음속에 찝찝한 무언가를 껴안고 잠이 들었는데 어제는 그것이 무척 부대끼더라고요. 뭐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체했나?를 찾아보니, 글쓰기의 부재였습니다.
오늘은 큰마음먹어봅니다. 큰 도전을 해보고 있습니다. 주말이지만 남편은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하러 갔고, 집에는 저와 아이 셋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 나는 컴퓨터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이 정돈되어 나올지 모르겠으나 해보렵니다. 아이들이 옥토넛 놀이하는 소리가 너무나 잘 들립니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머리가 새하얘집니다.(둘째 딸은 지금 “힘냈다! 힘냈다!”라고 소리칩니다. 나는 속으로 힘내라겠지...라고 말합니다.)
이 와중에도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생각을 하려고 하니 둘째 딸이 다가와 “엄마 나 팥죽 먹고 싶다”라고 불쌍한 강아지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군요. 아들딸이 엄마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들키지 마! 들키지 마!”라는 노래를 부르네요..... 생각이 끊어지고, 아이들이 신경 쓰이다가 다시 글로 돌아오고 나에게 돌아옵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내 마음, 내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육아도 글을 쓰는.... 둘째가 변기를 앞에 두고 바지에 쉬를 했네요.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바닥을 닦고 나니, 셋째가 졸리다고 웁니다. 셋째를 재우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랏? 어디까지 적었더라??
아이들과 육아는 나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셋째가 태어나고 나서 나는 글을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내 안에 많은 것들이 쌓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간절함이 생깁니다. 엄마로서의 삶이 힘들수록 나는 내가 얼마나 글을 쓰고 싶은지, 얼마나 좋은 코치가 되고 싶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중학생일 때, 장래희망에 기자라고 적고, 고등학교 때는 소설가라고 적었더랬지요. 정작 대학에 가서 시간이 철철 넘쳐흐르던 때 나는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만나 놀기 바빴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또 놀았지요. 학교 신문사에 들어간 친구들을 질투 어리게 바라보며, 내가 더 잘 쓸 수 있는데...라고 지질한 생각을 하는 나를 미워했습니다.
한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와서 영화평론가가 되어야지!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미래가 무섭고,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꿈”이라는 것을 위해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것을 모른다는 것도 나는 그때는 몰랐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김연수 작가를 동경하며 그처럼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틀렸어, 나는 이제 너무 늦었어...라는 패배감에 힘들었습니다. 꿈을 떠올릴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아픔에 일부러 꿈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0대 중반의 나의 매일은 그저, 매일 숙제로 받은 쓴 물을 마시는 일과 같았습니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한 번에 들이마시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나는 김연수 작가처럼 대단한 작가가 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자리와 김연수 작가의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 두 자리 중에 우열이 없다는 것도 압니다. 이것을 알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깨달음의 중심에는 출산과 육아가 있습니다.
내 뱃속에 생명이 있는, 내 안에 심장이 두 개가 있는 하이브리드의 신비한 경험은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항상 자책만 하던 나인데, 그런 “나”가 신비롭고 아름다운 생명을 세상으로 보내는 대단한 사람임을 알았을 때 나는, 나에 대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끝없이 울고 집은 거지소굴이고 남편은 회식 중이고 나는 괴로워 소리 지르고 발을 동동 굴렀을 때 나는 나를 살리는 법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계속 말 걸다 씨알도 안 먹히니 자기들끼리 놀다가 싸우다가 울다가 때리다가 화해하다가 다시 놉니다. 기대 이상이군요. 그래도 고래고래 고함치며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징징거리는 목소리에 나의 말초신경이 찌릿찌릿해도 글을 썼습니다. 엄마에게 끝없이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들입니다. 쉼 없이 엄마를 성장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아이들입니다. 24시간을 240시간처럼 느끼게 해 주는, 나에게는 아인슈타인보다 더 대단한 존재들입니다.
책상에 붙여놓은 문구가 오늘따라 눈에 띕니다.
“좋아, 창조성아! 네가 질을 맡아. 양은 내가 맡을게.”
방학 중에도 글을 쓴 내가 고맙습니다. 대견스럽습니다. 오늘 밤은 편하게 잠잘 수 있을듯합니다.
당신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인가요?
육아로 힘든 와중에도 놓을 수 없는 당신의 소망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