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불러보고 싶었지만 그날 이후로 부르지 못했던 이름입니다. 방선희. 살면서 처음 죽음을 마주했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입니다. 선희는 중학교 2학년때 알게된 친구였습니다.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아있던 선희와 키가 작아 맨 앞에 앉아있던 나는 서로 이야기도 해본 적이 없는 사이었어요. 선희와 그 짝지가 자주 떠들어, 담임선생님께서 그 둘을 맨 앞 줄에 앉게 하신 덕분에 우리는 짝지가 되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내 생애, 165cm가 넘는 장신 친구는 선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키 큰 아이와는 친구가 될 수 없을 줄만 알았는데 우리는 무척 빨리 친해졌어요. 교환 일기도 쓰고, 같이 학원도 다니고, 독서토론회도 가고, 선희집에서 짜장면도 시켜먹고... 선희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도 자주 만났지요. 나와 다른 면을 많이 가진 선희를 만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즐거웠으며, 선하고 정많은 선희와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나는 선희가 참 좋았어요.
고등학교를 서로 다른 곳에 가게 되면서 연락이 많이 뜸해졌어요. 사이가 멀어지는 것 같아 선희에게 종종 투정 부렸습니다. 평일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선희집에 갔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희. 선희가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하는데, 그 얼굴이 얼마나 밝고 예쁘던지...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지내는 선희가 부럽기도 하고 내가 없어도 잘 지내니 야속하기도 했지요. 그 주 일요일이었을 거예요. 선희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우리 아빠 가게에 가자고 했는데, 선희가 약속이 있다며 못간다고 했어요. 나는 또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고,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뾰루퉁하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일 줄은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저녁 보충 수업을 마치고, 다른 반 친구가 나를 부르더라고요. 선희가 크게 다쳤다고요. 또 옆에 다른 친구는 선희가 죽었다고 말을 했어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제발 죽지 마 선희야. 그냥 넌 다친 걸거야. 니가 죽을 일 없어. 그럴 일 없어.'하며 급히 교무실에 뛰어 가 선희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자주 전화해서 항상 기억하고 있는대로 전화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온몸이 떨렸어요. 수신호가 울리고 얼마 있다가 선희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셨어요.
“아버지! 저 은화예요. 잘 지내시죠?”
“아~ 은화가! 오랜만이다. 나는 잘 지내지.”
“별일 없으시죠 아버지?”
“응 그래 별일 없다.”
“아버지, 오늘 선희가 많이 다쳤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선희 괜찮지요?”
“...... 은화야, 선희 죽었다. 선희 죽었다.”
아직까지 그때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별일없다는 선희 아버지의 말씀에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릅니다. 선희는 괜찮구나.... 잘못된 소문이라 다행이야... 하지만 바로 뒤에 전해 들은 선희의 소식, 그 이야기를 하시는 선희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와 울음... 거짓말 같았던 그 말. ‘선희 죽었다’라는 그 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앞이 핑 돌았던 그 순간. 울음도 나오지 않고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던 그 순간. 선희아버지의 울음 소리만 들렸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희의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뒤에 선희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선희의 언니를 만났어요. 언니는 선희의 유품을 정리하며 내게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하더라고요. 4남매 중의 막내이고, 늦둥이로 평소에도 부모님과 언니오빠들의 예쁨을 많이 받은 아이였어요. 나라면 어떤 유품도 절대 주지 않고 고이고이 간직할 것 같은데 왜 주려고 하시지...하며 의아했습니다. 언니가 말했어요. 시종일관 담담했던 언니가 처음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은화야. 선희 오래 오래 기억해줘.”
오늘 아침,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차 안에서 선희가 생각이 났습니다. 선희와 이별한지 20년이 넘었습니다. 벌써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선희를 잊지 말아달라던 언니의 모습과 오열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생각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선희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때 가져온 선희 사진을 다시 봅니다. 활짝 웃고 있는 16살의 선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같이 걸어가던 그 길이 떠오릅니다. 추운 겨울 등굣길에 팔짱을 꼭 끼고 추위에 맞서던 겨울의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어른들을 지나치며 우리가 어른이 될 날이 올 거라 생각 못했던 16살의 겨울 아침. 선희집에서 함께 유행지난 중국 영화를 보던 일, 중국배우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며 신나했던 선희의 얼굴과 목소리. 우리가 입었던 교복, 선희의 가지런한 치열, 선희집의 냄새까지...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살아있습니다. 연락안되는 다른 친구들처럼 선희도 여전히 어디선가 고운 치열을 보이며 밝게 웃으며 잘 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재밌고 마음 따뜻했던 방선희가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습니다. 여전히 나의 유일한 키 큰 친구인 선희가 보고싶습니다. 질투 많고 잘 우는 정은화가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고 말하면 선희는 얼마나 놀랄까, 우리 아이들을 보며 어쩜 이렇게도 엄마를 닮았냐고 말하며 뽀뽀해주고 예뻐할 것 같은 선희. 선희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방구라고 불렀던 것이 미안하고, 선희에게 투정만 부리고 끊었던 마지막 통화도 너무 미안합니다. 그렇게 될 줄 몰랐지만, 제대로된 인사 못한 것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미안합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순간 종이에 손이 베여 붉은 피가 흐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처럼, 불현듯 차오르는 선희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아픔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셋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던 내가 죽음이 무서워졌습니다. 남겨질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죽는 것이 무섭습니다.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서 지금 죽으면 어떻게 되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에게 나의 마지막 모습은 아름답길 바랍니다. 화내고 짜증내는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순간에는 나의 진심이 통하길,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해주길 바랍니다. 어떤 순간이 우리의 끝이어도 그 모습은 아름답길 바래봅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을 더 깊게 사랑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래봅니다.
선희야, 너의 중국어 노래도 듣고 싶고, 내 팔꿈치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너의 팔꿈치에 팔짱끼고 매달리듯 걷고 싶다.
너의 17년을, 20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너 참 에뻤어. 내가 알지. 내가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어. 우리 다시 만나면, 예전처럼 꺄르르 웃으며 신나게 이야기하자. 선희야~ 방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