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동안 느껴보지 못한 "가벼움"을 느꼈습니다. 비록,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집을 어지르고 내 말은 전혀 듣지 않지만 오늘은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지난 토요일 일요일, 부산 3Cs Ⅱ Plus 과정을 들었습니다. 코칭관련된 워크숍이었는데요, 이혜영코치님께서 강의를 해주셨지요. 셋째딸을 맡길 곳이 없어 나는 아이를 업고 참여했답니다. 사실, 아이를 업고 강의에 참여해야한다니, 내 삶이 참 서글펐어요. 아이가 셋인 것이 버겁고, 아이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최근에 사주명리학 스터디를 했는데, 진행해주시는 분이 우리 아이들 사주를 보시며 엄마의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하셨지요. 나는 좋은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요. 아이 셋 키우는 것이 힘들어 아이들에게 자주 화내고 짜증내는 엄마인데... 나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망가질까봐 너무나 걱정되고 무섭고 두렵고... 이 곳에서 벗어가고 싶었어요.
내 몸 위에 큰 바위가 나를 누르는 것만 같았어요. 바위 밑에 깔린 나는 그저 하염없이 파랗고 넓은 하늘을 동경하고 있지요. 답답하고 서글픈 생각이 끝없이 드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무가 듣고 싶어하는 강의에 셋째딸을 업고 해야한다니...(왜 하필 남편은 이때에 해외 출장은 간걸까!!!!!) 서럽고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웠어요. 남편도 아이들도 아이를 셋이나 낳은 나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왜 나는 엄마가, 다둥이 엄마가 된 것일까... 하며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이 괴로운 마음을 나에게도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들키기 싫었어요. 잘 있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매일 슬프고 화가났어요.
강의실에 다들 예쁘게 입고 앉아 계신데 나는 아기띠를 하고 있었지요. (아기띠하면 옷에 뭐 뭍어도 티가 나지 않아 좋긴 합니다만) 아이를 데리고 와서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아이도 맡기지 못하고 온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왜 나는 저분들처럼 편하게 강의를 들을 수 없을까...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자신감은 땅굴을 파서 지하암반수를 만나 안부를 전할 것만같았지요.
강의 중에 코칭실습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고객이 되어 '엄마로서의 삶과 코치로서의 삶 사이의 간극이 너무 힘들고 불편하다. 아이들을 고객처럼은 못하더라고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해 힘들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코치역할을 해주신 분이 나를 안쓰럽게 보며 '너무 애쓰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반발감이 확 올라왔습니다. 누군가에게 동정어린 눈빛을 받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때서!!!!라는 내면의 자아가 큰소리를 치더군요.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애쓰는 나도 나예요. 이런 내가 잘못됐다고 하고 싶지 않아요."
마음에 드는 나도 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나도 납니다. 모두가 다 납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했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어떻게든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 셋을 키우는 것, 당연히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잘 해내고 싶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나"가 있었습니다. 내 삶의 큰 화두 중에 하나는 "가치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함"입니다. 내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 것은 죽을 것만같은 고통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다둥이 엄마의 길을 내가 잘 가고 있음을 증명하지 않는 것은 죽을 것만 같은 고통,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왜 증명하려고 해? 왜 애써? 그러지 마? 마음 내려놔!라는 말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왜 무서해? 왜 죽음을 받아들지 못해? 천국을 믿어!'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화가 났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나는 그런 나의 욕구를 가만히 바라봐주고 싶습니다. 그런 나의 욕구를 나만의 방식으로 다루고 싶었어요.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다루는 나만의 방식, 내가 제일 잘하는 방식...은 뭘까요? 나답게, 나에게 잘 어울리게 나의 삶의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방법을 나는 이영혜코치님께 배웠습니다. 진지하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코치들만 만나다가 발랄하고 유쾌하고 솔직하고 카리스마 있는 코치님은 처음뵀어요. 자신의 실수와 자신의 단점을 가감없이 말하는 코치님의 모습을 보며,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음이 강력한 힘임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보는 코치님을 보며 그 삶 자체가 "존재코칭"임을 배웠습니다. 마음에 드는 나도 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나도 나다!의 삶을 살고계신 분이셨습니다.
나에게는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다 벗어나지 못한 그 누군가의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육아서적에 나온 좋은엄마의 그림자, 부드럽고 세련된 홍OO코치님, 엄마계의 보살인 김OO코치님 등... 내가 갖지 않은 결을 가진 분들을 보며 그 그녀들처럼 되려고 애쓰고, 되지 못해 좌절했고, 나를 탓했습니다. 키가 157인 내가, 키 170이 입는 긴 드레스를 입고 뛰려고 했던 것처럼요. 계속 드레스가 밟히고 넘어지고 찢어지는데도 나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어요. 그 속에 엄마로서, 코치로서, 강사로서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 '나'가 보입니다. 넘어졌어도, 마음대로 잘 안됐어도....끝까지 잘하고 싶어한 나에게 고맙습니다. 잘하고 싶어했기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나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싶습니다. 나에게 제일 잘 맞는 옷을 입고 싶습니다. 그 옷은 아마 항상 내가 입고 있고, 내 옷장에 항상 걸려있는 옷입니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옷입니다. 옷장을 열면...입을 옷이 없어...라고 새 옷을 사고 싶어했지요. 매일 봤기때문에 알아주지 못했던 나의 옷. 나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옷은 솔직함과 유괘함입니다. 이렇게 대놓고 써보니 쑥쓰럽네요.
나에게 안맞는 옷을 입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으니 편하고 가볍습니다. 잘 안맞는 옷도 입으려고 애썼던 시간덕분에 지금 내옷이 얼마나 나에게 잘 맞는지, 내 몸에 착 감기는지 알겠습니다. 나는 또 애쓰고 또 좌절하고 슬퍼할 겁니다. 흔들릴겁니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예전보다는 좀더 빨리 내 옷을 찾는 눈이 생겼을 거라 믿습니다.
지난 밤에 같이 강의를 들은 분에게 카톡이 하나 와 있더라고요
"코치님, 전쟁과 평화를 얘기했었는데 (엄마와) 평화로웠던 이틀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달덩이(저의 셋째딸)와 코치님을 포함한 다른 '엄마'인 코치님들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코치님과 달덩이에게 감사드려요"
아이 업고 강의 듣는 것이 괜시리 눈치 보이고 서글펐는데, 이 카톡을 보니 눈물이 왈칵... 그저 나는 아이를 업고 있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평화의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었네요.
내게 제일 잘 맞는 옷이 무엇인지 얼른 찾을 수 있도록 극한 육아에 도움을 주신 달콩, 달님, 달덩이과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제일 고맙습니다. 하하하. 또 그렇지만.. 얘들아... 앤가이하자.(부산 사투리인데... 표준어로는 적당히하자)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은 언제인가요?
당신에게 가장 마음에 안드는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그때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