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식혜

by Robin

지난 토요일 밀양에 있는 시댁에 갔습니다. 시아버님께서 어깨 수술 후 관리 차 새로 생긴 목욕탕에 간다시길래, 둘째 딸과 함께 나섰습니다. 한시간 뒤에 아버님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딸과 목욕탕으로 들어갔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딸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노모와 그녀의 딸인 중년의 여성이었습니다. 딸아이가 탕 안에서 나에게 안겨 첨벙첨벙거리자,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시며 쳐다보셨습니다. 미소를 지으시는 할머니를 보니, 그녀의 온몸과 온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농사일로 등이 휘었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이었습니다. 그녀가 살아왔을 세월과 고생을 떠올리니 마음 한켠이 무거우면서도 감사했습니다. 그녀 덕분에 그녀의 딸이 클 수 있었겠지요.



할머니와 딸의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두 분다 8~9년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친할머니께서 하루는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그때 할머니 연세가 90세였을거예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인데, 큰집 오빠가 할머니를 업고 왔습니다. 할머니는 둘째 며느리인 우리 엄마에게 목욕탕을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할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에를 갔다오셨습니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할머니께서 엄마에게 목욕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와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 샤워실에 가서 할머니를 목욕시켜드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의 임종을 보며, 점점 심장박동수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숨을 쉬시지만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는 할머니를 보며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나를 보면 반가워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던 주름진 손이 생각이 났습니다. 자신에게 뽀뽀 한번,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안한다고 투정하시던 할머니의 말도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 볼에 뽀뽀를 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할머니의 임종을 앞에두고서야 했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혼자서 오래 사셨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딸인 우리 엄마가 용돈을 주어도 절대 받지 않으셨어요. 그때 우리 가정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때문이셨지요. 외할머니집은 항상 먼지한톨 없이 깨끗했습니다. 커튼이 바닥에 끌려 더러워질까봐 비닐로 커튼 끝을 묶어두셨고, 이불도 각을 잡아 접어주셨지요. 외할머니는 항상 걸레로 바닥을 닦고 계셨습니다.


내가 취업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깐 10년 전에 외할머니댁에 갔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셔서 티비도 재미가 없다하시고, 허리를 다치쳐서 노인정에도 나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거실에 앉아 밖에 사람들 다니는 모습을 구경한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외할머니의 집은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바닥에는 먼지가 쌓여있었고, 부엌에는 씻지 않은 그릇이 쌓여있었습니다. 나에게 절대 일은 안시키시던 외할머니께서 빨래를 빨라달아고 조심스레 부탁을 하셨습니다. 외할머니의 겉옷이 대야에 담겨져 있더군요. 그리 많지도 않은 빨래를 힘도 별로 들지 않고 이리저리 빨아 널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몇번이고 "고맙데이~ 고맙데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외할머니께서 허리를 다치시고 혼자서 일상생활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번씩 외할머니댁에 갔습니다. 나도 종종 엄마 따라 외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반찬도 해드리고 미용실에도 가고 목욕탕에도 가고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었지요. 그리고 간식도 사다드렸는데, 팥빙수아이스크림, 캔식혜, 카스테라... 등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나에게 너무 일상적이었던 음식들이, 외할머니에게는 90살이 되어서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는 것에 미안했습니다. 천원짜리 팥빙수아이스크림에 우유를 섞어 먹으시며 행복해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캔에 식혜가 들어가 있는 것에 놀라워하시며 맛있어하시는 그 모습도 떠오르고요. 한입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카스테라도 맛있게 드셨지요.


외할머니께서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더이상 불가능해 요양병원에 들어가셨어요. 총명이 가득했던 눈빛이 텅비어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했습니다. 항상 나를 더 반겨하셨는데 이제는 손녀보다는 외할머니의 딸인 우리 엄마만을 쳐다보셨습니다. 바쁜 일이 있어 한 주 오지 못한 딸에게 서운하다는 표현도 서슴없이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 가게일로 바쁘셔서 우리 남매는 자주 외가에 갔었습니다. 우물이 있는 마당, 높은 마루, 우리가 썼던 숟가락, 멀리서 들려오는 기찻소리... 하나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잊은 줄 알았던 외할머니와의 기억이 내 몸 곳곳에 있더군요. 내 안에도 외할머니의 유전자가, 외할머니의 일부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목욕탕에서 우리 엄마 나이의 아주머니와 우리 할머니 나이의 할머니를 보니, 눈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엄마와 할머니가 목욕탕에 가시는 모습을 보던 내가, 이제는 나의 딸과 함께 목욕탕에 왔네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할머니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이제 죽어야지~"라고 말씀할실때, "내가 아이 낳고 아이가 초등학교 가는 것도 봐야지!" 했더니 혀르 내두르시며 "그때까지 살아라고!"하시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시아버님과 만날 시간이 되어 옷을 입으러 탈의실로 가니, 계속 눈길이 갔던 모녀가 보였습니다. 나가야하는데 나가야하는데...하면서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님은 화장실에 가시고 따님의 뒤모습을 조용히 보시다가, 혼자서 천천히 바지를 입으시는 할머니를 보며, 우리 할머니도 우리 엄마랑 저렇게 목욕탕에 왔겠구나... 매주 딸을 기다렸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할머니께 다가가,

"할머니, 식혜 좋아하세요? 제가 식혜 하나 사드리고 싶어서요."

"네 좋아합니다~"

식혜 두 캔과 빨대 두개를 들고 할머니께 다가가니 따님이 와계셨습니다.

"할머니 보니, 저희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요. 식혜라도 하나 사드리고 싶었어요."

나는 네 살 딸아이를 통해 식혜를 할머니께 전해드리며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따님은 친절하고 따뜻하게 할머니께 이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이천원을 얼른 꺼내 할머니께 드리더군요. 그리고 저희 딸에게 용돈으로 주라고 알려주시자, 할머님은 그 돈을 우리 딸에게 건내주셨습니다. 우리 넷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두 모녀는 빙그레 웃으시며 우리 모녀를 바라보셨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가는데, 두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밀려왔습니다. 식혜 한도 못사준 것이 미안했어요.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할머니께 받기만 했습니다. 나도 언젠가우리 엄마를 모시고 목욕탕에 다니는 날이 오겠지요. 그리고 언가 나의 딸이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는 날도 오겠지요.



당연한 시간의 흐름이지만, 먼저 멀리 흘러간 그녀들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흐르는 시간이 아픕니다. 시간이 흘러도 흘러도 이분단씨, 이순악씨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1. 당신에게 그립고 보고픈 이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2. 보고픈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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