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엄마방송국이라는 네이버 카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사를 했고, 아이들 유치원 적응 기간이었고, 각종 스터디를 준비해야 했고, 강의 일정도 잡혔고, 나는 아이가 셋이고.... 글을 쓰지 못한 이유들, 마음만 먹으면 끝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들이 있지만... 나의 솔직한 이유는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글을 잘 쓰고 싶었어요. 잘쓰지 못할까봐, 쉽사리 노트북을 켤 수가 없었어요. 괜히 찔려 브런치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오늘 외출을 끝내고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 광안대교를 건너며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하늘과 출렁거리는 바다를 보며 감사하다... 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내 안의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가득 찬 나를 마주했습니다. 나는 항상 잘 하고 싶어합니다. 잘하는 내게서 벗어나길 바랬고, 벗어나려 애를 썼고, 벗어나는 것조차 잘하려고 하는 나였어요. 그런 내가 싫었습니다.
오늘, 광안대교를 건너며.... 애쓰고 있는 나, 잘하고 싶어 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봐줬습니다. 하늘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있듯이, 바다가 저 자리에 저렇게 있듯이...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조금 있어도, 푸른 바다에 흰 배들이 떠다녀도 하늘과 바다가 푸른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흰 구름과 흰 배들이 있어 그들의 푸름이 더욱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지요.
예전과 나와 지금의 나의 다른 점이 있다면 애쓰는 것을 바꾸지 못함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고치고 싶은 애쓰는 나도 나임을... 나에게 수십년 외면받아 상처받은 아이임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가만히.... 그 상처받은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줍니다. ‘그랬구나... 실패하고 싶지 않았구나... 상처받고 싶지 않았구나.... 존중받고 싶었구나...’하며 있는 나를 알아줬습니다. 잘하고 싶어 애쓰는 행동 뒤에, 나의 두려움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도 알아줍니다. ‘안녕? 너 거기 있었구나....’ 두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바다가 푸르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요.
차에서 내려 아이들을 데리러 유치원에 들어서자, 많은 엄마들이 보입니다. 그들의 관계에서 또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말들을 꺼냅니다. 집에 들어와, 잘하려고 애쓴 나를 봅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애씀”에 관한 통찰이 순식간에 사라진 미라클을 경험한 하루를 살펴봅니다. 나도 모르게 “자책”을 합니다. 자책을 하며 칼을 들고 반찬을 만들다 칼로 손등을 회 뜨듯 벴습니다.
손등의 상처가 아립니다. 마음과 달리 움직인 나의 언행을 자책한 마음이 아립니다. 존경하는 코치님이 해줬던 말을 떠올립니다. ‘균형은 평균대에서 걸어가는 것과 같다. 몸이 좌우로 흔들리지만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오려고 애쓰는 것이 균형이다.’ 그래요, 매순간 흔들림 없이 완전한 균형을 잡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매번 애를 썼고, 그 불가능한 일에 실패했다고 나를 몰아세웠지요.
잘하려고 애쓰는 나도, 좋은 깨달음을 고새 금방 홀라당 까먹은 나도, 홀라당 까먹어서 자책한 나도... 그 모든 나를 받아줍니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습니다. 그 모든 “나”들이 나입니다. 모든 “나”들을 받아주고 나니,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어줄 수 있습니다. 밥 먹다가 잠이 들어 양치 못한 둘째 딸이 귀엽기만 합니다. 다친 손등을 보고 ‘괜찮아?’라고 말해준 첫째아들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고치고 싶은 습관은 무엇인가요?
당신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준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