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선택하는 육아

by Robin

인간의 감정은 궁극적으로 두가지로 나뉜다. 사랑 그리고 두려움. 첫아이를 키웠을 때가 떠오른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고, 이 아이가 가진 온전함을 하나도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다. 모든 아이는 천재라고 했으니, 이 아이를 천재로 성장시키고 싶었다. 아이가 내 말에, 내 행동에 혹은 내가 아닌 그 누구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을까봐 전전긍긍했다. 내 눈에 아이는 예쁘고 작고 여린 유리알과 같았다. 그 유리알이 깨질까, 나쁜 곳에 갈까... 하루종일 그 유리알만 지켜봤다. 나는 내 아이를 내 목숨보다 더 간절하게 소중히여겼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첫아이를 낳고 헷갈렸다. 아이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왜 난 불행할까... 왜 난 눈물이 나고 힘겨울까.....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고 나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믿어주는 즐거운 마음이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해 내게 세 아이들이 와주었나보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해 나를 선택한 아이들이다. 첫째 아이를 기를 때 나도 모르게 찍힌 사진을 보면, 웃는 사진이 많이 없다. 항상 근심에 가득찬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근심은 사랑일까 두려움일까? 두려움이다. 사랑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내 사랑의 근원은 두려움이었다. 아이가 잘못될까 두려운 내 마음. 아이가 잘못될까 두려웠던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대한 불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존재로 여겼다. 내 아이만큼은 그런 아픔을 물려주기 싫었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내 아이에게는 주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종류의 사랑을 내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당연히 아이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전전긍긍했다. 나는 두려움을 피한다고 내가 가진 사랑을 알아주지 못했다. 내가 가진 사랑을 사용할 줄 몰랐다. 내 사랑이 온전하게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바란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보며 항상 슬픔과 근심걱정이 가득한 엄마였을까? 세상 사람들이 다 걱정해도, 너는 잘될거야. 괜찮아. 하며 웃으며 안아주는 엄마였을까?



자신에 대한 믿음의 근원은 부모님의 믿음이다. 부모님을 믿지 못하면 나를 믿을 수가 없다. 부모님은 나의 뿌리다.(이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부모와 별개의 존재로 나는 새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나는 나를 부정하게 되고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많이 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부모를 선택한다. 나의 부모님도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부모님이시다. 이것을 인정하는데 무척이나 긴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가장 잘 부모님이신데 나는 왜 이렇게 그들과의 생활이 괴로웠을까? 그건 내 삶의 무게다.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게. 내 삶의 나이테이고, 나의 성장의 원동력이다.



나는 부모로서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그 부족함이 내 잘못, 흠으로 여기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담담히, 객관적으로 그 부족함을 바라보고 싶다.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볼때, 그제서야 부족함은 성장의 출발선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성장은 편안함과 안락함 속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성장은 두려움, 불안, 부족, 불만...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불안, 부족, 불만....이 제대로된 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삶은 먹을 것이 없어서 씨를 뿌린 후에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는 것과 같다.


우리 부모님도 당연히 완벽하지 않으셨다. 카리스마 넘치고 강압적인 친정엄마를 내가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의 성격때문에 무척 상처받고 울었는데... 나는 왜 엄마를 선택했을까? 특정한 부분에 상처를 잘 받는다는 건, 그 부분에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의 엄격한 말에 무척 상처 받았다. 엄마의 무정함에 많이 울었다. 나는 언어와 감정에 재능이 있기에 엄마의 그런 성격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나를 더 성장시켰다. 엄마는 나의 재능을 성장시키게 해주는 큰 원동력이었다. 비록 나는 꽤 긴 시간동안 나의 재능을 "사랑"으로 보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여기긴했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내 몸에서 꼭 태어났어야만 했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서 배워야만하는, 경험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그들 삶의 목적에 맞게 살기 위해서 나는 그저 내 삶과 나 자신을 믿어줄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만나는 일들, 사람들, 감정들을 "사랑"으로 봐주는 것뿐이다.



오늘 첫째가 수영을 하고 싶은데 수경(최근에 내가 사줘서 애지중지여기던)이 보이지 않아 대성통곡을 했다. 수경을 꼭 끼고 수영을 하고 싶단다. 대성통곡하는 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준다. 속상하겠다. 수경을 끼고 수영하는 것을 얼마나 기대했는데...라고 말해준다. 내가 할일은 그게 끝. 계속되는 대성통곡에 내 마음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것도 그 아이가 경험해야할 감정이라 여겼다. 이 일로 엄마에 대해 원망을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하는 두려움은 없었다. 삶은 계속 메시지를 던지다. 우리 아이에겐 수경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까? 나는 모른다. 그건 첫째 아이의 숙제다. 내가 대신 풀어줄수가 없다. 내가 풀어주는 순간, 그 숙제는 더 크고 어렵게 우리 아이에게 다시 올 것이다. 우리 아이가 감당할 수 있기에 그런 감정이 폭풍처럼 몰아쳤을 것이다.

나는 그저 우리 아이가 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 배우길 응원해줬다. 이번에 배우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 없고.



사랑으로 육아하자고 다짐하지만 참 안된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우리 아이들이 잘못될까 무섭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사랑으로 선택하는 것을 연습한다. 그러기 위해 나를 점검한다. 나를 알아간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싶을까? 잘 안되도 계속 계속 사랑으로 삶을 선택하려고 즐겁게 연습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은 "사랑"이다.




Q.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으로 선택하였나요?

Q. 여러분은 아이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되고 싶나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