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 Jan 16. 2020

그저 바다가 보고 싶었을 뿐

아이들 방학은 5주. 5주라는 말에 친구들은 경악을 합니다. 뭐 그런 유치원이 다 있노! 니 진짜 어떻게 사노!라는 격정의 말도 함께 덧붙이지요. 방학은 5주. 나는 참 많은 것을 한 것 같은데 방학이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아,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아인슈타인에 대해, 나의 망할 놈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날이 흐렸어요. 시간은 여전히 정지에 가까운 듯, 숨 막히는 날이었지요. 우리 집엔 우리 아이들 셋과 옆집 아이 한 명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거실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얘들아 바다 보러 가자"

내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좋아하며 옷을 챙겨 습니다. 나가기 전에 화장실 갔다 오라고 하니 바로 화장실에 갔다 오고 장화랑 우산을 챙기라고 하니 착착착 준비합니다. 어찌나 말을 잘 듣는지. 꼭 이럴 때에만 말 잘 듣는 아이들.

sm5에 7세, 6세, 5세, 3세 아이를 태우고 송정으로 떠났습니다. 과적의 느낌을 충만하게 느끼며 운전을 했습니다. 비가 내리다 말다 하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어댑니다. 내 마음도 들뜹니다.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다가 보고 싶어. 이 마음 하나를 붙들고 네 아이와 송정에 갔습니다.

송정에 도착하니 줄기가 조금 거세졌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셋째는 내 등에 업혀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신나게 모래사장을 뛰어갑니다. 아이들은 장화를 신었지만 바닷물의 조석간만이 스릴 넘칩니다. 상쾌한 공기를 껏 마셔봅니다. 탁 트인 곳에 오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냥 그냥 흘러갑니다. 아이들의 짜증 나는 목소리도 그냥 그냥 흘러갑니다. 그래서 바다에 오고 싶었나 봅니다. 마음의 돌파구가 필요한 날이었습니다. 바다를 보니, 나는 행복해졌습니다. 바다를 봤다. 내가 바다를 보러 왔어! 아이들과 함께 모래사장을 뛰어다닙니다. 셋째는 여전히 내 등에 업혀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즐거웠습니다.



재밌게 놀고 있는데, 옆집 아이가 흥분했습니다. 흥분이 차오르자 우산을 바닥에 내리꽂기 시작합니다. 사람 안 때리는 게 어디야 하며 아이를 보고 있자니 그냥 웃겼습니다. 쟤도 힘들었나 보다. 어디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것이 힘들었나 보다... 하며 더 부셔라 더 부셔라 잘한다~고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응원하고 있더군요. 우산 부수는 장면도 웃겼습니다. 찢어지고 부서진 우산을 보는데 왠지 모를 희열! 통쾌함! 대리 만족은 잠깐... 빗줄기는 거세지고 아이가 감기 걸릴까 봐 걱정을 하며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사이에....


저기, 저~ 멀리 혼자 외로이 둘째 딸아이가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보입니다. 쟤가 왜 저기에 있지? 의아해하며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아이의 표정에는 심각함과 우울함이 가득입니다. 무슨 일일까.. 하고 두 발자국 더 간 순간 알아챘습니다. 딸의 바지가 젖어있음을... 아... 아... 아... 아....


"애들아 이제 집에 가자~"


아이들을 챙겨 다시 차로 갔습니다. 바다까지 오는데 20분 바다에서 논 것은 15분.


그래, 인생이 그런 거지. 그런 거지...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푸하하~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겼거든요. 힘듭니다.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 하나를 했다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끝이 난 것은 아니어서 웃겼습니다. 이 장면이, 요즘 내 인생 중 가장 내 인생다웠습니다. 힘든 상황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무모해 보일지라도 예상치 못하는 결말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는 것. 나다움을 온몸으로 체험한 날입니다. 나를 만나 반갑습니다. 름답고 신나고 웃긴 나의 15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여러분에게 생기, 기쁨, 만족을 주는 일은 무엇인가요?

Q.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에게 즐거움을 준 일은 무엇이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평가와 충고가 재능이라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