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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Mar 02. 2020

우울이 당신을 잡아먹으려 하거든

우울합니다. 오늘 나는 우울합니다. 우울한 이유를 찾아봅니다. 코로나 때문인가? 육아 때문인가? 남편 때문인가? 늘어난 몸무게 때문인가? 이유를 찾아보다가, 모든 것이 이유가 되고 모든 것이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울은 그렇게  또,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아이들에게 화를 냅니다. 목소리가 올라가고 아이들과 눈 마주치는 것이 싫습니다. 이런 내가 싫습니다. 우울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불안함에 벗어나려 해 봅니다. 감사일기를 써보고 모닝 페이지도 써보고 믹스커피 2개를 탄 진하고도 단 커피도 마셔봅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우울은 편안하게 내 마음 한가운데 앉아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내가 감사일기든, 모닝 페이지든 뭐든 하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요.


가만히, 내 온몸과 온 마음을 묶어둔 이 우울이라는 녀석을 느껴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몸무게는 100킬로는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은근히 누르고 있습니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무거워집니다. 부드러우나 무거운 힘이 있습니다. 부드럽게 나를 안고 그 어디도 갈 수없게 합니다.


내가 발버둥 쳐도 손톱이나 다듬으며 나를 깔고 앉아있는 우울. 내가 명상을 하고 호흡을 하며 조금 기운을 차리려고 할 때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깁니다. 우울은 나의 타이밍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치밀한 작전을 짠 것이 분명합니다. 우울이 나를 잡아먹는 날은 유독 나쁜 일이 많이 생깁니다. 나는 대처할 힘이 1도 없는 상태입니다. 방어력 제로. 아이들의 울음과 짜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한 일은 소리치는 일밖에 없습니다. 옆집에 사는 이웃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걱정이 됩니다. 나는 화조차 눈치를 보며 내야합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분노는 내 안에 칼이 되어 이곳 저곳 찌르기 시작합이다. 그 때,  내 위에 앉아있는 우울이 보입니다. 내가 이때 동안 배워왔던 나의 소중한 모든 것들, 모든 시간들 우울이 낚아채, 갈기갈기 찢어 후~ 불고 있습니다. 조각조각 흩날리는 나의 공부와 나의 노력과 나의 시간들을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바닥으로 사뿐히 내동댕이 쳐지고 있습니다.


다시 숨을 쉬어봅니다. 가슴이 꽉 막혀 숨이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목에서 할짝할짝거립니다. 내 안에 그 무엇이 이렇게 가득 차 있길래 숨조차 들어갈 곳 하나 없는 것일까요? 바늘구멍이라도 어디 있을까 봐 가만히 가만히 숨만 쉬어봅니다. 꽉 막힌 가슴을 부여잡고 숨만 쉬어봅니다. 눈물이 또르르 또르르.  아.. 나는 많이 많이 힘들구나.


나에게 우울은 나의 힘든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만기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삶의 힘듦에 숨 막혀하는 나의 존재가 나에게 보내는 절박한 구조 요청입니다. 나는 무엇을 아직도 꼭 잡고 있나, 나는 삶의 무엇을 아직도 놓지 못했나.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 아이 셋을 낳은 엄마라도 날씬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핸드폰 대신 책을 더 많이 봐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 한다, 시부모님께 잘 보여야 한다, 집은 깨끗해야 한다... 내 삶의 모든 장면이 나의 가슴이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우울이 나를 잡아먹으러 왔습니다. 나는 그저 숨을 쉽니다. 나는 그저 힘든 나를 알아줍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지만 괜찮습니다. 나만 알아준다면.... 나를 알아준다는 뜻으로 나는 계속 숨 쉬는 나를 알아줍니다. 숨 쉬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했다는 것을 이제야 압니다. 켜켜이 쌓여있는 삶의 모든 숙제와 고민과 슬픔과 외로움 사이에 작은 숨 하나 넣을 공간을 찾아봅니다. 찾을 때까지 가만히 숨을 쉬어봅니다. 숨 쉬기 힘들어하는 나의 옆에서 가만히 숨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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