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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라는 서글픔의 파도

2월 25일 주제 - 파도

by 생각샘

이른 아침부터 보강을 하느라 붐비는 출근버스를 탔다. 젊은이들이 지하철역 앞에서 우르르 내리고 제법 한산해진 버스에 머리가 하얀 한 할아버지가 신음소리와 함께 한 계단 한 계단 힘겹게 올라타셨다.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으신지, 다리를 올리지 못하시는지 발을 질질 끌며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하셨는데 버스가 출발해 버렸다. 비틀. 쓰러지시는 줄 알고 나도 모르게 어어 소리가 나오며 몸이 움찔했다. 다행히 바로 옆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자리에 앉으셨다.

할아버지가 앉으시자 반대쪽에 있던 할머니가 무겁게 일어나신다. 한 칸 한 칸 손잡이를 잡고 뒷문으로 이동하신다. 하필 풍납사거리 커브길. 버스가 급하게 우회전하는데 할머니는 한 손만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아직 잡지 못했다. 기우뚱. 할머니가 쓰러지시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슬아슬. 오늘 아침 버스는 대한민국 고령화의 위기를 보여주는 작은 드라마 같다.


2025년 대한민국의 고령인구 비율은 20.6%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단다. 앞으로 노인들의 위태로운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나의 양가 부모님 네 분은 모두 살아계신다. 그 와중에 나도 차곡차곡 늙고 있다. 우리 집안엔 이제 노인 4명, 중년 4명, 청소년 1명이다. 가족 중 누군가 혹은 우르르 아프기라도 하면 어째야 하나 싶은 걱정이, 조글조글 주름이 생기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며 나도 점점 세상에서 사그라지고 있다는 서글픔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늙음이 나에게도 시나브로 찾아오고 있는 중이다. 흰머리가 한가닥씩 늘기 시작하고, 눈가와 이마의 주름이 깊어지고, 눈은 침침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걸어도 무릎과 발목이 아프고, 조금만 무리를 해도 허리 통증으로 잠을 잘 못 잔다.

이런 노화의 서글픈 파도를 정면으로 맞이했으나 애써 감추려는 사자 한 마리를 소개해 주고자 한다. 정글의 왕 부루부루다.

일본 작가 후나자키 요시히코의 동화 <사자 왕 부루부루>의 주인공이다. 부루부루에게 처음 그것이 찾아왔을 때, 부루부루는 당황했다. 믿을 수 없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처럼 달릴 수 없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정글의 동물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숨겼다. 늙음을 숨겨야 했던 부루부루는 홀로 얼마나 외로웠을까? 또 그게 숨긴다고 숨길 수나 있던 것이던가? 결국 부루부루는 어떻게 되었을까? 비밀이다.

아, 이건 말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라는 거친 파도를 정면돌파 해야 한다. 심각한 문제는 도처에 생길 것이다. 우리는 부루부루와 동물들의 현명함을 서둘러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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